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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문화의 시대- 경험의 고갈과 자극의 증가
문화비평: 문화의 시대- 경험의 고갈과 자극의 증가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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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 부산대 영문학

대학에 자리를 잡은 지 채 1년도 안됐지만 나는 문화와 관련된 사회적 직책을 한두 개 갖게 되었고, 최근에도 몇몇 단체로부터 그런 직책을 제안 받은 적이 있다. 문화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런 실감 가운데 모종의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제안을 하는 쪽이 문화를 바라보는 나의 입장이 어떠한 것인지를 과연 알고 있는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 자신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제안을 동시에 받게 될 때다. 그 때는 제안하는 상대방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호성이, 그리고 ‘나를 둘러싼 문화’의 모호성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최근 들어 문화에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과거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십년 전만 하더라도 ‘비판’이나 ‘혁명,’ 그리고 ‘민주주의’와 같은 용어가 문화라는 개념이 갖는 부족함을 메워주었다면, 이제 ‘행정’, ‘경영’, 그리고 ‘운영’과 같은 말이 문화를 보충하는 말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문화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가리킨다. 우선 문화가 우리 삶의 구체적 일부분이 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를 통해 정치적 대안이나 사회비판을 마련하려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보려는 의지가 우리 사회를 주도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경제적 이익이 문화를 움직이는 힘이 될 때, 문화는 근본적으로 모호해 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화가 갖는 삶의 경험적이고 비판적인 가치에 대해 무관심하고 오직 이윤만을 겨냥한 경제 논리가 문화를 지배하는 데서 비롯하는 모호성이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란 문화를 구체적 삶과 경험으로부터 추상화시켜 다른 것과 교환이 가능한 가치, 곧 상품가치로 치환하는 논리를 말한다. 이런 논리에서는 내가 현재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형성해가는’ 문화적 경험보다는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상품화된 문화가 더 중요해진다.

코웬이라는 문화경제학자는 자신의 저서 ‘창조적 파괴’에서 시장과 자본의 세계화가 가난한 지역의 문화를 활성화시킨다고 주장하면서 세계화를 비판하는 논자들에 맞선다. 그에 따르면, 시장의 창조적 파괴는 주변부 국가들 내부에 고품질의 다양한 장르의 문화적 창조물을 엄청나게 생산해내고 문화적 선택의 메뉴를 확대시켰다. 그 결과 멕시코, 브라질, 아이티는 문화적 후진국에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활력 있는 창조적 중심으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코웬의 주장은 오늘날 전 세계 부의 40%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중심부 4개국에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문화의 선진국이 경제적 후진국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나 또는 문화가 경제적 불평등을 은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의 논리 속에 없는 것이다. 

특히 코웬은 문화나 삶의 경험이 자본의 소비시장에서 내재적으로 겪게 되는 변화를 간과한다. 소비사회에서의 문화적 다양성은 경험의 다양성과는 다르다. 그곳에선 개인의 선택이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들은 급속도로 확장되지만, 삶의 질적 경험은 극도로 빈곤해진다. 오늘날 어린이의 놀이문화가 놀이동산에서 보낸 인공적 경험으로 채워지듯이, 우리의 삶의 경험 역시 외견상의 다채로움과 윤택함에도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유형화된 경험으로 대체된다. 왜냐하면 이런 사회에서는 사물이 사물로서 갖는 질감이나 사물과 우리 사이의 독특한 경험의 형성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빨리 다른 사물과 교환되는가라는 양적이고 표면적인 관계가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비사회의 다양성은 경험의 다양성과는 무관한 자극의 다양성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다양한 경험은 새로운 충격과 자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고 삶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현대적 삶의 공간 속의 경험들이 비슷비슷해져감에 따라 이런 단조로움을 상쇄하기 위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환상적 경험이 더해지게 되고, 그에 따라 우리의 감동 능력은 결정적인 퇴화를 맞이하게 된다. 다양하고 강도 높은 자극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단조롭고 권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극의 다양성이 갖는 역설이며 문학과 예술이 갖는 위기의 근본원인이다. 나아가 소비사회에서 문화가 맞이할 운명의 뒷모습일 것이다.

최근 문화담론의 대대적인 유행과 문화 활성화의 이면에는 문화를 돈벌이와 연관시켜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이 들어있다. 문화전공자로서 내가 느끼는 불안은 그 왜곡된 시각을 확산시키는 데 나 또한 편승하고 있지 않나 하는 데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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