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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학술용어정비사업을 지지하며
제언: 학술용어정비사업을 지지하며
  • 김영환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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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우리 학문의 꿈

지난 6월 23일에 학술 단체 연합회 주최로 학술 용어의 문제점과 방향이란 제목으로 학술 용어 정비 사업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였다. 학술용어 정비사업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학단연 안에 ꡐ학술용어표준화위원회(가칭)ꡑ을 조직해 운영하며 그 산하에 분야별 기술위원회를 선정해 해당 세부 분야의 전문가 및 관계자가 용어표준안을 개발할 것이라고 한다. 즉 하위기관으로서 각 분야의 학회를 중심으로 구성될 예정인  기술위원회가 표준안을 협의 조정하고, 운영위원회에서 이것을 심의해 결과를 통보해 각 학계의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고 한다. (6월 30일치 <<교수신문>> 참고)

학문하는 태도와 학술용어

 인문계보다 이공계에서 용어 통일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은 걱정스런 대목이다.  비록 공학이나 자연 과학의 용어가 엄밀하게 뜻을 매길 수 있는 것이 많다고 하드라도 우리의 현실에 대한 주체적인 반성이 근본 과제인 인문계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작업을 몇 가지 전문 용어를 바꾸는 것으로만 보지 말고 학문하는 태도와 외국 문물을 대하는 태도라는 더 큰 맥락에서 이를 볼 필요가 있다.

 학술 용어를 외국어를 그대로 들여오지 않고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학문 공동체가 이 용어로 교육과 연구를 하며 또 토론의 마당을 마련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용어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할 새 이론을 지어낼 것을 꿈꾸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일은 일찍이 우리 역사에 없었던 일이다. 우리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1930년대부터 문무성에서 모든 분야의 학술용어의 표준화를 장기적으로 지원해왔고 그 결과 1990년 초기에 학술용어집성이 완성됐고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개정판이 나오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우리와 일본과 이런 큰 차이는 이미 중국 고전과 한문을 대하는 태도, 근대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드러났던 것이다. 한문을 뜻으로 읽는 일본의 전통은 그대로가 번역의 전통이다. 근대화가 뒤진 일본이 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에서 이끈 번역 정책에 따라 서양의 근대 문물을 제것으로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이런 서양 문물에 대한 태도는 그들의 중국 고전에 대한 태도가 옮겨간 것이라 할 수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는 한문을 중국어 어법에 따라 소리로 읽고 번역의 전통이 몹시 가난한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의 주자학이 몹시 교조적이고도 단선적으로 된 것은 이런 한문 읽기 방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학계의 번역에 대한 반성적 비판이 없었다. 학술 용어나 번역에 대한 무관심은 곧 학문과 교육의 매체인 우리말과 글에 대한 무관심이고 학문의 ‘보편성’에 대한 비판없는 추종을 낳았다. 또 이러한 경향을 국제화나 세계화라는 구호로 당연하게 여기며 이에 대한 비판은 속좁은 민족주의 탓으로 돌리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북한과도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말 천대에서 벗어날 때

 더 나아가 교육과 학문 연구에서 우리말글 사용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외국어로 강의하고 논문을 쓰는 행위의 의미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경제학계는 대교협의 대학 평가에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미국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지나치게 우대하는 것을 꼽았다. 경제학계의 이런 반론은 충분한 이유가 있고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로 외국 잡지에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값진 것이라 여기는 것은 근거없는 생각이다. 우리와 깊은 관련을 갖는 문제를 우리말과 글로 논의하는 것이 훨씬 값진 것이라 보아야 한다. 외국 잡지도 그들 나름의 역사적 맥락에서 생겨난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국 잡지에 글을 싣지 못하면 무능하고 게으른 학자란 주장은 지식의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맥락에 눈을 뜨지 못한 채  학문의 보편성을 소박하게 믿어 버린 데서 나온 것이다. 외국 잡지에 논문 싣는 일에 지나치게 값을 매기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전혀 문제로서 의식되지 않고 스쳐 지나가 버릴 수도 있다. 우리말과 글로 우리의 관심사를 다를 학문 공동체는 영원히 형성되지 않을 것이며 끝없이 외국 이론을 뒤쫓는 데도 숨이 가쁠 것이다. 이는 기업에서도 기술 도입이 절대시되어 미국말 실력이 곧 경쟁력이 되는 풍조와 평행한다.

 이 작업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많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우리 학문, 우리 이론이 가난한 것은 학문이 우리말글을 천대하는 주요한 명분이 되어 온 인습과 관계가 깊다. 학문과 교육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조건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참된 우리 학문은 처음부터 빗나간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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