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9:50 (목)
‘유리천장’을 깨고 우주에 닿은 여성 천문학자들
‘유리천장’을 깨고 우주에 닿은 여성 천문학자들
  • 허정윤
  • 승인 2019.09.27 1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리우주' (별과 우주를 사랑한 하버드 천문대 여성들) | 데이바 소벨 저 | 양병찬 역 | 알마 | 2019.09.11.

<유리우주>는 과학논픽션 작가인 데이바 소벨의 논픽션이다. 흡사 영화 <히든 피겨스>를 떠오르게 만드는 여성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리우주’는 천문대에서 사용하는 유리원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25센티미터짜리의 액자만 한 크기의 이 유리원판의 한쪽 면에는 사진유제가 얇게 코팅 되어 있고, 그 위에는 수천 개의 별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유리원판 10여 장쯤 모이면 여성 천문학자들은 이를 분석해 우주의 비밀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유리우주> 속 백인 여성 연구자들은 여성에게 참정권도 없던 시절, 당시 남성의 보루로 여겨졌던 하버드 대학교에서 활약했다. 하버드 천문대는 19세기 후반부터 여성들에게 과학기관으로서는 매우 독특한 고용 기회를 제공했다. 그들은 계산원으로서 매의 눈을 가지고 유리건판에 각인된 우주의 모습을 훑었다.

‘피커링의 하렘’으로 불리며 드러나지 못한 채 일했던 여성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하늘의 별이 우리와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Edward Charles Pickering)은 1877년 있으면서 자신의 계산수(computers)로 여성을 고용했다. 계산은 당시 지루한 일이고 전문성이 없어도 되는 분야로 여겨졌다. 별과 우주를 치밀하게 관측한 후 유리판에 약품을 발라 별들을 기록하는 게 계산수의 일이었다. 남성들은 계산수로 일하기 원하지 않았고, 여성들에게는 저임금을 줘도 괜찮은 사회 분위기였다. 파격적인 채용 뒤 씁쓸한 시대상을 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피커링은 여성이 천문학 연구에 참여하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고 여성 대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당대의 상황을 정당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지금 시점에서 보고 있자면 여성혐오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여성의 고등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여성은 남성이 하는 것을 따라 할 수는 있어도 창의성이 부족하므로, 그녀들이 연구에 참여한다고 해서 인류의 지식이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책은 하버드에서 공식 직함을 부여받은 최초의 여성이자 밝기가 변하는 300여 개의 별을 발견한 윌리아미나 플레밍을 비롯해 별의 유형별로 온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내고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세실리아 페인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비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명확하게 알려준다.

저자는 플레밍이 남녀평등 원칙을 굳게 믿었지만,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었으므로 여성의 ‘참정권 투쟁’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플레이밍은 ‘천문학에서의 남녀평등’에서는 물러섬이 없었다. 플레이밍은 논문을 발표 전, “여성이 모든 면에서 남성과 똑같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인내심, 지속성, 체계성 덕분에 많은 분야에서 남성을 앞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더불어 플레이밍이 낮은 임금을 받는 여자들이 주어진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며 견뎌야 하는 세태를 “시대에 뒤떨어지는 발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고 기록했다.

별까지 거리를 재는 방법은 고안해 헨리에타 스완 리비트는 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허블 법칙’에 지대한 공언을 했다. 리비트는 성악가를 꿈꾸며 음대에 들어갔지만, 청각장애인이 되어 음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리비트는 래드클리프 칼리지로 옮겨온 후 천문학을 전공하게 되는데, 이때 피커링이 리비트의 능력을 알아보고 연구조교로 채용했다. 리비트는 그녀는 최신 분광법을 이용해 별을 찾고 그 밝기를 알아내는 일을 맡았다. 리비트가 주목한 변광성은 이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지구에서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근거를 제공했고, 나아가 ‘우주는 팽창한다’는 ‘허블 법칙’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여성 계산원들은 성실히 별을 관찰했고 학문을 갈고닦아 박사와 연구자로 성장했다. 하버드 천문대는 이들이 남긴 무수한 유리원판을 자산으로 삼아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연구를 이어나갔다.

<유리우주>는 미시적인 과학 논픽션이면서 저자 데이바 소벨의 인간애를 볼 수 있는 기록이다. 독자는 책에 기록된 하버드 천문대의 여성들의 성실함과 서로를 위하는 연대가 인류 공익에 기여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