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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사이버-맑스』 (닉 다이어-위데포드 지음, 신승철 외 옮김, 이후 刊)
주간리뷰 : 『사이버-맑스』 (닉 다이어-위데포드 지음, 신승철 외 옮김, 이후 刊)
  • 이성백 시립대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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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코뮤니즘의 전망

이성백 / 서울시립대, 철학

 

후기산업사회론 혹은 정보사회론과 관련해 한국의 번역계에는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류의 보수주의적인 경향의 저작들로 일색이 돼있고, 그에 비판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좌파적 경향의 저작들의 번역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허버트 쉴러의 ‘현대자본주의와 정보지배논리’와 마크 포스터의 ‘정보사회이론’ 등이 고작이다.

 

닉 다이어-위데포드의 ‘사이버-맑스’의 번역을 통해서 그 몇 안 되는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정보화에 대한 좌파의 이론적 대응이란 측면에서 ‘사이버-맑스’는 이전의 연구들에 비해서 한 걸음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의 연구들이 주로 우파 정보사회론의 이데올로기적 허구성을 비판하는 소극적, 수세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책은 이를 넘어서 정보화에 대한 좌파적, 맑스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적, 공세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사이버-맑스’는 다양한 서구 맑스주의‘들’에 대한 평가를 거쳐 들리즈, 가타리를 포함해 안토니오 네그리의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를 “정보혁명을 전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항해석”이라고 제시하고, 이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의거해 “컴퓨터화된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21세기의 코뮤니즘”을 구축하는 대안적 전망을 제시하고자 시도한다.

 

"혼란스러운 폭력과 전제적인 약탈에서 벗어난 자유는 멸종된 생물을 되살려내는 유전학적 실험을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됐다"(본문 41-42쪽에서)

 

그러나 자본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안을 실현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제안된 대안들은 현재 투쟁의 최전선에서 필요한 전략들에 불과하다는 유보조항을 달면서 위데포드는 제로노동, 제로상품, 제로국가, 제로테크놀로지의 네 가지를 대안적 전망의 요소들로 제시한다. 특히 위데포드는 정보화가 자본주의적 현실에 기여하면서도 그 대안의 물질적 조건을 창출하는 이중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관점에 서서 대안적 전망에 접근하고 있다. 네 가지 전망 중에서 가장 핵심에 해당할 제로노동에서 위데포드는 첨단기술의 자동화는 자본의 이윤 실현에 동원되고 있지만, 그것의 촉진은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해 “낙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고는 해방적 가능성을 포착한다. 이 책에서 제안된 대안적 전망의 요소들은 비록 ‘대안 부재’의 시대에 갈증을 해소시켜줄 정도는 아니지만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사점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사이버-맑스’는 단적으로 말해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입각한 정보화의 이론적 분석이다. 이로부터 이 책의 한계가 찾아진다. 우선 왜 여러 맑스주의들 가운데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가 정보화의 분석에 가장 적합한지에 대한 논거가 부족하다. 대안적 전망들과 관련해서는 정보화가 창출하고 있는 해방의 물질적 조건들이 무리하게 자율주의의 틀에 맞춰진 감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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