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1:45 (목)
해외학술대회참관기 : 제26차 국제비트겐슈타인 심포지엄
해외학술대회참관기 : 제26차 국제비트겐슈타인 심포지엄
  • 배선복 정문연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학의 배반자'라 불린 사나이

배선복 / 정문연, 철학

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는 어떤 글에서 "나는 비트겐슈타인에 비해 철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걸레 같다는 느낌이 들어 부끄럽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의 어떤 점이 한국의 존경받는 원로학자로 하여금 이런 말을 하게 만들까. 비트겐슈타인이 '타임'紙가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백명 가운데 유일한 철학자라는 사실은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불러일으킨다.

이런 놀라움은 지난 8월 3일부터 일주일간 오스트리아 산골에서 열린 제3회 국제비트겐슈타인 심포지엄을 보면 더욱 증폭된다. 3백여명이 모인 이 자리에 무려 1백60여편의 논문이 오직 비트겐슈타인을 해명하기 위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활동을 언어분석에 두는 현재 영미의 언어 분석적 전통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혁명적으로 모든 것을 사고했으며 그의 이런 철학적 감행은 비록 언어철학 뿐 아니라 마르크시즘적 사유에도 뻗어와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번 대회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비트겐슈타인의 진리이론에 대한 해명에 초점이 맞춰졌다. 가장 이슈로 부각됐던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진리이론과 우주론적 지식에 대한 한계와 믿음에 대한 문제였다. 비트겐슈타인에서는 소위 문장과 사실의 상응설, 단어의 쓰임에 따른 실용설, 다수의 사람들의 함의에 의한 컨센스설이 다 공존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이즈 인식론 워크숍을 포함하여 비트겐슈타인, 지식, 믿음, 확실성, 인식의 정당화, 마음과 언어, 과학과 종교 등의 주제가 분과별로 다뤄졌다.

월요일 오후 비트겐슈타인 분과의 첫 번째로 '말 되어질 수 없는 것의 존재적 환원'으로 필자는 데카르트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도달한 서양사유의 한계에 대해 발표했다. 파사우대의 류터펠드는 '비트겐슈타인의 볼 수 없는 과거, 그 기억'을 발표했다.

둘째 날도 진지한 발표가 이어졌다. 오후에는 뮌헨대의 부르크하르트가 의학과 철학에서, 속성, 부분, 그리고 징후들에 대한 존재론적 지위에 대해서, 빈대의 라이너는 흄의 회의주의 문제를 베이즈 이론에 기초한 사고실험을 통해 극복해보고자 했다.

금요일 오후에는 리딩대의 글록이 비트겐슈타인의 표준적 진리이론을 반박하고 그를 분석철학을 지배하는 진리의 실재론적 이론 편에 세웠다. 문장과 사태의 일치는 이조모피는 설명하지만, 의미보다는 진리의 조건기술에 치중하기 때문에, 참된 문장과 사실의 진리 만들기 관계에는 실패한다. 그의 후기 디플레이션 이론도 기술의 형이상학적 설명을 포기한 것이며, 그의 컨센스 이론도 반실재론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의 검증주의는 '진리의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명제의 개념'에 관련된 것이다.

토요일은 아침 일찍 숙소인 쌍트 코로나 언덕 5㎞를 일본 학자 카미야마와 터벅터벅 내려왔다. 멀리 '체험과 분석'이라고 내년의 대회 주제가 걸려있는 게 보인다. 갑자기 원효를 흉내내고 싶어진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으며, 그것은 곧 답변이었다." 존재의 거부로 '철학의 배반자'라고 러셀이 비트겐슈타인을 비난했다면, '존재적 환원'에 '침묵할 필요는 없다'는 항변 역시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이유 있는 배반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