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19 15:55 (화)
174건 자문 진행중…‘기업-정부’사이 간극 메우는 역할 중요
174건 자문 진행중…‘기업-정부’사이 간극 메우는 역할 중요
  • 허정윤
  • 승인 2019.09.20 1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성율 KAIST 기술자문단 단장 인터뷰

결국은 ‘차차세대 기술 지속적 투자’ 정부의지가 관건
자문 자체가 교수 네트워크 통한 ‘경험공간 확대’ 효과

일본 수출 규제 이후, 많은 국내 대학이 기술자문단을 꾸려 기업들을 지원했다. 카이스트(KAIST)는 그중에서도 제일 발 빠르게 국내 중소기업의 원천기술 개발을 돕는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 설치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 카이스트 기술자문단은 아산의 신생 반도체 회사 (주)레이저쎌을 직접 찾아 기술적 한계에 대한 진단과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도 하는 등, 기술 컨설팅의 현실화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카이스트 기술자문단을 이끄는 최성율 단장(공과대학 부학장)은 “일주일에 52시간 일하는 게 아니라, 수면 시간을 포함해 52시간 쉬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기술자문에 대한 의미와 한국의 단기·장기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소신을 밝힐 때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최성율 KAIST 기술자문단 단장 ⓒ 카이스트

카이스트는 지난 10일까지 152건의 전화와 이메일 상담을 진행했고 22건의 현장 자문 신청을 받았다. 최 단장은 지금도 기술자문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의 기술자문은 홈페이지(http://kamp.kaist.ac.kr/)에서 ‘기술자문 신청서’를 작성한 뒤, 기술자문단 사무국 이메일(smbrnd@kaist.ac.kr)로 보내면 된다. 하지만 기술자문을 신청한다고 해서 자문을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 단장은 “화이트 리스트 이펙트(White List Effect)를 받는 기업인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나라 주력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자동차 기계 품목인 경우 먼저 검토한다”고 말했다. 기술자문단이 설치된 후 화이트 리스트 규제 품목이 아닌데도 기술 문제라며 신청해 온 기업들도 있었다는 게 카이스트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 단장은 “기업마다 처한 상황과 연구 역량이 달라 그에 맞춰 기술자문의 효용이 큰 업체를 고려해서 선정하고 있다”고 말하며 일반적인 산학협력이나 기술자문의 경우는 기존의 카이스트 산학협력단 기술사업화센터로 안내해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청서가 뭐가 중요하나!’ 하면서 역정을 내는 분들도 있다. 조급한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다” 최 단장은 자문 업무를 보면서 곤란했던 경우가 있었냐는 물음에 안타까워하며 답했다. 최 단장은 기초적인 데이터나 연구 인력이 없는 곳에서 ‘무조건 다 도와 달라’ 하시는 업체들이 종종 있다 보니 곤란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기술 기밀이 유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술자문서 작성을 꺼리는 기업들이 있는데, 기술자문은 기밀 보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았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카이스트의 기술자문은 신청 기업들에게 자문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 최 단장은 “국외 출장을 다녀온 당일, 시차 적응도 채 안 됐을 몸을 이끌고 자문을 기다리는 업체와 미팅을 가진 교수님도 있다”며 기술자문단 참여 교수들의 열정을 대변했다. 카이스트는 국가 예산 지원 기관이기에 추가 예산 확보에는 상당 부분 절차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운영은 일종의 재능기부 형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전까지의 산학협력과 기술자문단의 역할과 자문 진행 등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최 단장은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나 국산화하기에는 오래 걸리는 전략물자에 집중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 단장은 “보통 산학협력을 통한 자문 신청은 빠르게 진행해도 한 달 정도 걸리지만, 애로기술 자문은 10일 내에 미팅까지는 완료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단장은 자문 자체가 ‘경험 공간의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카이스트의 자문으로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교수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가 기업과 연계될 수 있다며 자문의 또 다른 효용을 설명했다. 교수들은 교육·연구 현장에서 연구 과정이나 성과를 공유하는데 이러한 방법을 산업체에 적용했을 때 훨씬 더 다양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최 단장은 이러한 지식 공유와 협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 단장은 “한국 소재 기술이 마냥 ‘약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중소기업 중에는 소재 강국이라는 영국과 일본보다 잘하는 회사들도 꽤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이 유독 취약한 소재만 선별해 일본이 규제를 걸었다는 의미다. 최 단장은 “전략 수입 소재에만 규제를 거는 방식으로 일종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방식”이라며 일본을 비판했다.

최 단장은 한국이 이때까지 원천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한 탓도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압축성장 사회에서 ‘집중’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표현을 달리했다. 한국이 잘 할 수 있는 분야 발전에 집중했다는 의미다. 가령 산업기술 중에는 ‘메모리 D램’이 있는데 80년대 말부터 꾸준히 투자해 SK 하이닉스나 삼성 같은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최 단장의 설명이다. 최 단장은 “메모리 업체는 개발 초창기에 세계적으로 큰 기업이 20개 이상이었는데, D램은 이제 3개만 남았다”라며 그중 2개가 한국 기업이기에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소홀했다는 말보다는 ‘완전제품 개발에 집중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확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일본 수출 규제로 촉발되었지만, 한국 과학기술의 현주소가 세상에 알려진 중요한 기회기도 하다. 이러한 사태를 타개할 단기적 해결책을 묻자 최 단장은 “최우선으로 ‘다변화’를 들 수 있고,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선진국 기업의 대부분은 전 세계를 돌며 소재를 직접 찾거나, 정부에게 M&A 지원을 요청해 기술을 사들이는 식으로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최 단장은 글로벌 M&A를 통해 기술이나 기업을 확보하는 게 실질적으로 빠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 단장은 ‘꾸준히 밀어주는 힘’을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 단장은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이 변경되고 이로 인해 연구가 지속적해서 진행되지 못한다고 말하며, 매번 정기적으로 새로운 사업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한국의 실태를 꼬집었다. 이번 일본 규제를 기점으로 한국 과학기술 분야 강화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는 국내 수출 강소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해주고 핵심 품목의 R&D 예산은 지출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최 단장은 “예타 면제 제도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지만, 현재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려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에 대처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으려면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당장 결과물이 안 나오더라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최 단장은 “정부가 ‘차세대’ 기술이 아니라 ‘차차세대’ 기술에 투자하는 주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카이스트는 민간과 정부 사이에서 생각의 간극을 메워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