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7:10 (토)
고구마를 수확할 무렵 
고구마를 수확할 무렵 
  • 교수신문
  • 승인 2019.09.20 1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평님(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지평님(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오후 3시. 사무실을 나섰다. 두 시간 넘게 모니터로 원고를 교정하던 눈이 피곤해서이기도 했고, 불쑥 다가온 가을 햇살이 좋아서이기도 했다.

큰길 건너 선유도로 가서 한 바퀴 돌고 올까, 아니면 바로 옆 안양천 산책로를 걸을까. 잠시 망설이다가 안양천 쪽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부쩍 자란 수변 식물들을 보았다. 비가 많이 내리던 지난 8월 중순경 한 차례 산책로 주변 조경작업을 했음에도 그새 길 양쪽 언덕은 풀들로 무성하게 덮인 상태였다.

예쁘게 피어난 외래종 꽃들을 보면서 나는 지난 추석연휴 때 다녀온 고향 집의 텃밭을 생각했다. 집 오른쪽으로 길쭉하게 만들어놓은 1,000제곱미터가량 텃밭에 스무 가지 넘는 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팔순 넘은 아버지가 가꾸는 식물들이었다. 야산으로 향하는 맨 위쪽 가장자리를 차지한 건 넝쿨호박이었다. 바로 아래에 가지와 피망과 파프리카와 오이가 심기고, 꽤 넓은 고추밭이 이어졌다. 고추밭이 끝나는 야트막한 둔덕에는 잎이 넓은 토란과 강황이 가을 햇살 아래 위용을 뽐냈다. 저 당당한 초록 잎사귀 덕에 땅속 열매들은 바야흐로 성장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터였다.

둔덕 아래서는 김장용 채소들이 제 형태를 드러내며 몸집을 불리는 중이었다. 배추와 재래종 무, 샐러드용 서양 무, 갓이 자라는 밭 한쪽으로 치커리와 비트와 부추와 파밭이 보이고, 그 옆 돗자리만한 땅에는 바질과 로즈마리, 애플민트 같은 허브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수확이 코앞인 고구마 밭이 이어지는 식이었다. 

왕성하게 열매 맺은 생물을 제 손으로 거두는 일은 매우 각별하다. 그게 얼마나 재미나고 가슴 벅차게 감동적인지는 직접 해본 사람만이 안다. 무성한 고춧잎과 초록고추, 빨간 고추, 색색의 파프리카와 가지와 호박잎을 따느라 오랜만에 모인 우리 가족들은 한나절을 보냈다. 다음날은 고구마 캐기에 나섰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로는 으뜸인 식물. 그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 고구마 밭마저 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던 것 같다. 다소 이른 수확이었음에도 빨갛게 모습을 드러낸 고구마 덩이는 실하고 탐스러웠다.

줄기를 걷어낸 땅을 호미로 파서 잘 자란 고구마를 캐내며 나는 한창 교정 중이던 원고를 떠올렸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 지구 생태계에 가한 충격과 대전환을 이야기하는 역작이었다. 고구마 역시 콜럼버스적 대전환의 주요 산물이었다. 

고구마는 본래 열대아메리카에서 자생하던 작물이었다. 이 외래 작물이 유독 동아시아인들에게 사랑받는 까닭이 따로 있는 걸까? 내가 교정보던 원고는 스페인을 거쳐 필리핀으로 소개된 고구마를 중국으로 빼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중국 명나라 상인 진진룡의 일화를 다큐멘터리처럼 소개하고 있었다. 반출이 금지된 이 식물을 얻기 위해 그는 스페인 관리들에게 뇌물까지 준 뒤 고구마 넝쿨을 밧줄과 함께 둘둘 말아 바구니에 넣어 위험천만한 항해를 했다. 마침내 중국 땅에 상륙한 고구마 넝쿨은 시들시들했지만 비옥하지도 않은 땅에 줄기를 잘라 꽂자 쑥쑥 자라났다. 그런데 하필 그 시기가 소빙하기의 정점을 이루었던 1580년대였다. 줄기찬 장마와 차디찬 기후로 인해 수년째 흉작이 찾아들었다. 굶주린 백성들은 나무뿌리나 풀, 벌레를 잡아 연명했다. 그때 진진룡과 그의 아들이 가난한 농민들에게 고구마 줄기를 나눠주면 어떻겠느냐고 지방관에게 청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대박을 쳤다. 이 식물은 토양을 탓하는 법이 없었다. 모래밭이든 황토든, 심지어 불모지로 버려졌던 야산이든 가리지 않고 튼실한 덩이를 맺었다. 맛도 좋은 데다, 내다 팔 경우 다른 작물보다 두둑한 소득까지 안겨준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무섭게 중국 전역을 넘어 한국 등 이웃나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큰 고구마 생산지이자 소비국으로 올라서게 됐다는 얘기였다.  

안양천 산책을 마지고 돌아와 모니터 앞에 다시 앉았다. 이야기는 이제 옥수수로 넘어갔다. 마침 해가 지고 허기가 찾아들자 지난여름 냉동실에 갈무리해둔 옥수수가 너무 먹고 싶어졌다. 서둘러 일과를 정한 뒤 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