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19 23:00 (화)
‘성폭력 담당관 불안한 지위’가 학내 성평등 걸림돌
‘성폭력 담당관 불안한 지위’가 학내 성평등 걸림돌
  • 허정윤
  • 승인 2019.09.20 1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 내 성폭력 해결책 없나
대학, 성평등으로 가는 길 (1)

담당관, 비정규직이라 학교 눈치 보기
징계위 최종 결정은 법인·총장에 달려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관”자성론 일어

“여자들은 벌써 XX가 다 됐다. 방학 때 일본에서 몸 판다”, “유흥주점에 전북대 여학생들 많다”, “전쟁이 나면 여자는 제2위안부가 되고 남자는 총알받이가 된다” 이 모든 말은 대학 강단에서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쏟아낸 발언이다. <교수신문>은 이런 대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책 세미나와 인터뷰를 통해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의 실태와 근절을 위한 제언을 전하고자 한다.

'중앙대 K교수 권력형 성폭력 기록보관소 페이스북'에 올라온 포스트잇 퍼포먼스 사진
ⓒ 중앙대 K교수 권력형 성폭력 기록보관소 페이스북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한국 ‘미투’(#MeToo)운동은 스쿨미투(#SchoolMeToo)로 이어져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가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교육부는 (사)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와 손잡고 올해 3월 대학 성희롱·성폭력 근절지원 중앙센터를 수행기관으로 지정해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 역량 강화 지원에 나서고 있다. 교육부는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1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학 성희롱·성폭력 근절지원 중앙센터와 협의회 주관으로 ‘대학 성희롱 성폭력 근절을 위한 양성평등 문화 확산 정책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대학 내 차별과 혐오, 성별에 기반을 둔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양성평등한 대학 문화 조성을 위해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의 효율적 운영 정책 및 제도 제안을 위해서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는 전국 각 대학의 상담센터·인권센터 담당자와 해당 사안에 관심이 있는 학내 구성원들이 참여해 주제발표와 지정토론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노정민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 대표는 개회사에서 “15년 전 각 대학에서 성평등 업무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정보공유와 네트워킹으로 시작했다. 올해부터 교육부 산하 대학 성희롱 성폭력 근절 중앙센터 역할을 하게 됐다”며 협의회 발자취를 간략히 설명했다. 노 대표는 이어 “우리 협의회는 대학 성평등 기구 운영과 담당자 실태를 살피고,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사건 처리, 행정업무, 메뉴얼 등 자료를 개발한다”고 주요 활동을 소개했다.

- 주제발표1 : 대학, 성평등으로 가는 길 :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날 주제발표 첫 연사로는 이나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가 나섰다. 이 교수는 ‘대학 내 드리워진 차별·혐오로부터 성평등으로의 변화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허정윤

이 교수는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스쿨미투’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포스트잇 퍼포먼스’ 사진을 여러 장 제시했다. ‘포스트잇 퍼포먼스’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인 교수의 연구실 앞이나 학교 게시판에 가해자의 파면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붙이는 행위를 뜻한다. 이 교수는 학생들이 대자보 보다 퍼포먼스를 선호하는지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자보 보다 경제적이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개별성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등의 대답이 나왔다. 이 교수는 “‘포스트잇 퍼포먼스’는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금(20대) 세대의 감수성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고 “포스트잇에 적힌 손글씨가 이성적으로 쓰인 대자보 보다 감성적인 마음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전의 대자보가 조직의 집단성이 의제를 이끌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개인의 감정과 의견이 우선이 된 사회상을 방증한다. 

이 교수는 연일 일어나는 ‘교수 막말’도 문제지만, 학생들 간 성갈등 역시 심화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익명으로 운영되는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내에서 심각한 여성혐오가 조성되고 있음에도,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실태를 비판했다.

이 교수는 현실이 막막한 가운데서도 대학의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대학은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제도적 성평등 수준이 다른 제도 기관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대학이 청소년기에 입시준비에만 바빴던 학생들이 인권에 대한 개념과 인권 감수성을 배우고 성평등이 구현되는 실제를 체험할 수 있는 첫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특히나 대학을 다니는 기간이 길어지는 추세에 대학 안에서 인권의 개념을 배우고 적용하지 못하면 사회에서는 연습할 곳이 없음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대학 내 성평등 문화 확산과 정립의 중요성을 재차 말하며, 한국 대학의 서열화, 학연·연고주의, 남성 중심적 위계질서를 ‘한국대학의 특수성’으로 명명하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학내 성희롱·성폭력 문제의 상당수가 여학생과 남교수의 간극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에서도 나서고, 대학마다 성평등 관련 기구를 설립해도 유지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교수는 “성평등 센터나 인권센터가 생기더라도 공간, 재정, 전문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고, 담당관의 안정적 지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평등 문화 확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학 재량에 맡긴 부분이 관련 센터의 담당관의 채용형태 부분인데 대부분 학교가 2년 계약직으로 담당자(상담)를 충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교수는 “이 경우 업무의 연속성도 떨어질뿐더러 비정규직 담당관이 학교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 내 드리워진 차별·혐오로부터 성평등으로의 변화 모색’에 대해
이나영 교수가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 허정윤

이어 이 교수는 “실제로 센터들의 중요도가 교내에서 상승했다고 보지만 센터 보직교수 자리에 성인지 감수성이 없는 교수가 오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로 인해 센터 담당관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자격이 충분한 센터장과 보직교수가 오더라도 문제는 계속된다. 이 교수는 “센터 구성원을 ‘공간 침입자’ 즉, 학교를 시끄럽게 만드는 ‘문제를 제기하는 여자’라고 보는 현실에서 어느 누가 견딜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징계절차 문제에서도 센터 접수와 상담이 먼저 이뤄지고 조사가 진행돼도, 결국 최종 징계위 결정에서 법인과 총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해 유명무실한 기관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성평등 관련 기구 설립과 유지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밖에도 성폭력 사건유형과 사건처리 시 개별성을 지닌 다양한 사건들이 많기 때문에 비가시화 되어 있는 부분은 대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성평등 사각지대화’가 우려된다. (피해자가 직원이고 교수가 가해자인 사건, 피해자가 교수·강사고 가해자가 학생인 사건 등)

이 교수는 주제발표 말미에서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학문 간의 벽을 넘어 공부하는 자세와 각종 연대를 통해 혐오와 차별에 용인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이론을 습득·재구성하고, 실정에 따라 재정지원과 관련 학내 강좌개설 요구가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