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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가 아니고 '마~트'라니까요!
'마터'가 아니고 '마~트'라니까요!
  • 교수신문
  • 승인 2019.09.1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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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27)-마터
정세근 교수

하루 종일 강의를 하고 나니 피곤해서 일찍 잤다. 그런데 연휴가 있다고 편집장에게 연락이 온 것이 있었다. 내일까지 꼭 원고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 오후에 수업이 있고 곧이어 회의가 있어 시간은 오전밖에 없었다. 차라리 밤에 쓰자. 이런 마음으로 11시쯤 일어나 동네를 돌았다. 운동하는 것도 좋지만, 걷다보면 이것저것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한 동안 학교를 걸어 다니면서 참으로 좋았던 것이 걸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것이었다. 

동네를 돌다보니 원고 주제가 두 개가 떠오른다. 하나는 일반적인 주제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 동네 살던 미국양반이야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와서 땀을 식히고 찬물을 끼얹고 나니 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참내, 아무리 중간에 카이사르 이야기를 읽었기로서니, 그래 와장창 까먹어? 나이 탓인지, 머리 탓인지, 둘 다인지 모를 일이다. 머리 나쁜 놈이 나이까지 처먹으니 설상가상이다. 

그래도 미국분이 살던 아파트를 지나치다 이야기꺼리 하나를 얻었고, 그건 동네와 연상되는 것이라서 잊어버리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자책 말자면서도 자책이 든다. 하루키는 떠오르는 단상을 노트에 적어놓지 않는다고 했는데(아마도 잊힐 것은 잊혀야 한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나 같은 놈은 곧바로 적어놓는 것이 상책인 것 같다. 

부인이 한국 사람이라 은퇴 후 고향에서 1년 정도 살자고 해서 우리 동네에서 잠시 살게 된 부부였다. 외로운지 만남에 적극적이었고, 그러다보니 종종 보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는 데 편승해서 싸구려 포도주를 사놓고 주접을 떠는 것이 기실 행사의 주된 내용이었는데, 그가 한국인의 영어발음은 마지막 자음을 세게 말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과장되게 흉내 내면서 지적한 것이 떠오른다. 

엄청나게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이를테면 ‘ABCDE마트(mart)’라고 할 때 ‘마~’에 공을 들이고 ‘트’는 약하게 재빠르게 사라져야 하는데, 대부분의 한국인이 ‘마’와 ‘트’를 구분 없이 균등하게 발음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었다. 그의 귀에는 ‘마~ㅌ’ 정도면 좋겠는데 한국인들이 ‘마터’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것이었다. 과장하면 ‘마’는 약하게 ‘트’는 강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홈마트’를 말하고, ‘홈플러스’가 아닌 ‘홈마이너스’라고 우스개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서야 홈플러스가 왜 그런 이름을 가졌는지 알았다. 

변명을 하자면 우리는 초, 중, 종성의 개념이 분명히 있고 따라서 모든 단어는 완전히 발음되는 것(‘트’, 나아가 무음 ㅇ이 들어가는 ‘틍’)이 성운법에 맞는 것이지만, 영어는 라임(rhyme) 정도로 운율을 넣는 것이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한시도 평측(平仄)이라는 규칙으로 각운을 맞출 때 운(韻)이 비교적 강하게 발음되는 것이니만큼 우리말 중, 종성 강조의 원칙과 다르지 않다(운雲과 군君). 특히 강한 측성인 입성(入聲)에서는 더욱 그렇다(학鶴과 각閣). 

사실 요즘 젊은 래퍼들이 라임을 맞추는 것을 보며 나는 전통을 느낀다. 국어시간에 각운(脚韻)을 이야기할 때는 듣지도 않던 학생들이 흑인의 랩에 빠지면서 모두가 시인이 된 느낌이다. ‘난 이럴 때 꼰대~, 그러나 너희들은 멀대~, 우리 모두 안 돼~’ 이렇게 말이다. 가끔 씩은 길거리에서 섹스피어를 만나는 기분도 느낀다. ‘한국인은 아무래도 순대~’

20여 년 전 우리말 역순사전을 큰맘 먹고 사놓았다. 이런 큰 작업을 해놓은 사람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컴퓨터의 위대함은 탐색기능(index)에 있는데, 아직까지 컴퓨터사전에 ‘대’를 치면 ‘대’로 시작하는 말이 나오지 ‘대’로 끝나는 말은 나오지 않는 줄 알았더니, ‘찾기에서 ~로 끝나는 말’을 찾으니 바로 뜬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함부로, 가라사대!’하면 ‘바로, 절대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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