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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 칼럼] 을지로를 각인한 영원한 흑백의 콘트라스트
[김희철의 문화 칼럼] 을지로를 각인한 영원한 흑백의 콘트라스트
  • 교수신문
  • 승인 2019.09.0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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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옥 개인전 'TIME ATELIER II'을 보고 와서
무제 ⓒ신희옥
무제 ⓒ신희옥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서너 개월 동안 을지로 3가역에 저녁마다 차를 두고 대리운전을 했었다. 조명 가게, 공구 상가 등이 많이 있는 을지로의 낮 풍경은 빛나고 번잡하겠지만 가게마다 셔터가 내려진 을지로의 밤풍경은 불 꺼진 상가의 분위기가 그렇듯 스산하고 조용했다. 하지만 태양 빛 환한 대낮에도 을지로가 삭막한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는 건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서 깨달았다. 대규모 공사를 위한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공사현장에 설치되는 펜스와 먼지날림을 막는 분진망이 장거리 트랙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에 주상복합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비교적 한가로운 날 오후, 나는 마치 사진작가가 된 것처럼 카메라를 들고 을지로를 둘러보았다. 재개발 공사가 예정인 커다란 부지 한 켠에서는 포크레인 기사 두 사람이 엔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공사장을 좀 높은 곳에서 보려고 세운상가 건물로 올라갔다. 수십 년 전 호황기의 상징적 주상복합 건물이었던 그곳엔 여전히 영세 업자들의 작업실과 사무실이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맨 윗 층 반 평짜리 방엔 방범 직원으로 보이는 노인이 선풍기 하나 달랑 틀어놓고 누워 쉬고 계셨다. 출판업종이 많은 골목을 돌아 명보극장 있던 M아트홀 앞에는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었다. 장군의 출생을 기리는 흔적은 돌비석에라도 있지만 수십 년 을지로에서 먹고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은 누가 기록해 줄까?  

그런 기록을 한 사람이 있긴 했다. 을지로의 골목에서 나는 한 사진작가의 개인전 포스터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그 사진전을 보러 갔다.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었다. 마치 하이파이브 하는 것처럼 사람의 손과 백구의 앞발이 부딪히기 직전을 포착한 사진, 셔터가 내려진 쓸쓸한 골목 저 끝에 그 백구가 주인을 기다리듯 앉아 있는 사진, 이면지 모아서 직접 만든 메모지 뭉치(종이를 집은 클립엔 가장 흔하게 쓰였던 볼펜이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에 사람들의 이름을 한자로 빼곡하게 쓴 사진 등도 흥미로웠지만 역시 눈이 오래 머무는 사진들은 사람들이 찍힌 것들이었다. 프레임 안의 사람들은 무표정한 초상으로도 있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찍혔다. 상인 잔치하는 날 노래방 마이크 들고 노래를 하고 옆에선 탬버린을 흔들며 박수를 치거나 흥겹게 디스코를 추는 모습 등, 웃음 짓게 만드는 사진들도 많았다.   

한 때 다큐멘터리 영상 작업을 했었던 나도 한 인물이나 사건을 오래 만나오는 이른바 ‘관계맺기’에 대해 익히 들어왔었고 나 역시 내가 연출했던 작품 속의 인물들과 수년에 걸쳐 연락을 주고 받았다. 신희옥 작가는 이 을지로에 얼마나 오래 동안 왕래하면서 이렇게 멋지면서도 감동적인 사진들을 촬영했을까? 운 좋게도 내가 전시장에 갔을 때 작가님이 계셔서 간단한 소개를 한 후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다. 

“작가님, 그럼 이곳 분들을 얼마나 오래 만나오신 건지...” 

“7년이요.”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을지로 3가 공사 현장 ⓒ김희철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을지로 3가 공사 현장 ⓒ김희철

70일도 아니고 700일도 아니고 7년이었다. 영상이 소설이라면 사진은 시와 같다. 순간의 예술이다. 그 순간을 잡아내려고 그녀가 을지로의 골목 골목을 누비면서 상인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다녔던 기간이 7년이라고 한다. 

을지로의 모습은 이제 몇 년 후 아주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을지로의 산업 생태계와 장인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청계천 을지로 보존연대’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각종 활동을 하면서 충실한 기록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청계천을지로 보존연대에서 제작한 청계천 아틀라스 : 메이커 시티 (2019)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40년~50년 동안 한 곳에서 장사해왔던 사람들이 결국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버리고 시민은 이 독특하고 드문 공공의 유산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신희옥의 흑백 사진은 다시는 볼 수 없을 을지로의 시간을 기록했다. 높디 높은 주상복합 건물이 건물주의 수익을 위해 지어지고 그곳엔 또 다른 문화가 만들어지겠지만 우리는 사진이라는 기록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그래도 인간다운 미래를 꿈꾼다.

김희철 문화칼럼니스트/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 저자
김희철 문화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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