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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이 정상인 사회
비정상이 정상인 사회
  • 교수신문
  • 승인 2019.09.0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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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모 교수

현재 한국은 과학기술이 중요한 기술경쟁의 주요 요소라는 것이 충분히 인식되어 GNP대비  상당한 투자가 향후 진행되고 있으며 이 기술 투자는 한일 무역분쟁으로 더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실을 되돌아보면, 노벨상 수상자급 연구자를 배출해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출범한 포항공대도 30여년이 지나도록 수조원이 투입되었지만 목표 달성이 눈앞에 보이지 않고,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벤치마킹하여 출범한 기초과학 지원연구원(IBS)도 설립한지 10년이 가까워지고 거액의 연구비가 투입되고 있지만 노벨상에 근접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미래의 국가 존속과 번영을 위한 과학과기술의 발전과 이를 담당할 인재양성은 대학이나 연구소의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직 연구결과물에 대한 윤리의식은 상당히 부족하다. 기술과 공업, 상업을 천시하는 조선의 오랜 사대부 주도 역사 속에서, 스스로 데이터와 씨름하는 연구나 기술개발보다도 기관의 장이나 관리로서의 정치적 역할이나 직함이 더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온 결과이다.  
 
홍보와 전시적 결과물에 치중해온 정부 주도 과학기술 정책은 낮은 연구 윤리의식과 결합되어 연구나 교육에서도 극히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문제를 연구에서 야기해왔다. 연구비가 거대화되고 집단화 되면서, 직접적인 결과에 기여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교신저자로서 논문발표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저자로 넣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비 사용을 못하게 하고 과제에서 탈퇴시켜 젊은 연구자의 길을 막는 경우도 있었다. 많은 말단 연구자는 수행 중인 연구가 원활히 진행되어야 할 뿐 만 아니라, 향후 승진이나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리함을 알면서도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뼈 빠지게 노력한 대학원생이나 말단 연구자의 노력이 고등학생의 입학용으로 바뀐 경우도 있었다.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82건이나 대학교수들이 중고교생 자녀를 공저자로 등재했다고 한다. 남의 연구결과에 쉽사리 올라타거나, 가로채거나, 친지나 자식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해도 된다는 비윤리적 의식은 아주 조심해야 할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연구의식 하에 훌륭한 연구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모 교수 자녀의 논문 사건에 씁씁한 미소를 짓게 되는 이유는 연구에 있어서 깨어져서는 안 될 중요한 규칙이 한국 사회에서는 ‘그게 뭐가 대수냐’는 식으로 너무 쉽게 깨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이다. 고등학생이 전문 학술 저널의 주저자로 등재된 논문을 경이적이라거나 아니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대학입학에서 우수학생 선발 자료로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하버드 대학 마이클 샌덜 교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세계를 이끌고 가는 미국사회 지도자들의 인식의 근본 규범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에 비해, 현재 우리 사회의 정의는, 각자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보편성도 없고 정직성도 결여되어 되어 있다. 교육이나, 연구, 그리고 기술 추구는 스포츠처럼 정직해야 한다. 정치 논리가 지배하는 연구 세계에서는 결코 수준 높은 과학 기술 경쟁력이 길러질 수 없다. 정직한 노력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회 풍토가 자리 잡혀야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고, 한일 간의 기초기술 격차도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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