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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시대초월…이백년 후 사람들도 공감하는 그림
국적·시대초월…이백년 후 사람들도 공감하는 그림
  • 교수신문
  • 승인 2019.08.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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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승부수-《단원풍속도첩》
박물관 여행: 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
<서당>,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조선 18세기,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씨름>,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조선 18세기,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타작>,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조선 18세기,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무동>,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조선 18세기,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새참>,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조선 18세기,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다. 한 해에 어림잡아 300만 명이 이상, 하루 평균 8천여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주말이면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박물관에서 역사를 공부하려는 청소년들로 넓은 전시실에서는 교통 체증이 일어날 정도다.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답게 전시실마다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전시되었고 그중에는 멀리서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대표 박물관에 왔다는 설렘도 잠시 곧이어 당황스러워진다. ‘많은 유물 가운데 뭐를 봐야하지?’ 이럴 땐 박물관 안내지에 소개된 대표 유물들을 중심으로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 유물들 가운데 《단원풍속도첩》(보물 527호)과 같은 낯익은 유물이 들어있다. 아이들에게 옛 화가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제일 먼저 김홍도가 나온다. 알고 있는 옛 그림을 물어보면 “서당, 무동, 씨름, 새참”이 줄줄이 나오는데, 역시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다. 어른들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정도면 이 그림들이 있는 《단원풍속도첩》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물이라고 불러도 좋다.
《단원풍속도첩》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옛 그림과 글씨를 전시한 곳은 서화관이다. 그러나 부리나케 서화관으로 올라가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소득이 없을 확률이 99%다. 유명한 반가사유상도 전시실에 가면 늘 만날 수 있지만 쉽사리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원풍속도첩》이 빛과 습기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는 혹시 모를 손상을 줄이기 위해 짧은 기간 전시하고 전시를 할 때도 조명은 상당히 어둡게 한다. 안내지에 대표 유물로 소개되었지만 만나기 힘든 이유다.
《단원풍속도첩》에 있는 그림들은 어릴 때부터 접하는 예술 관련 서적이나 역사책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아이들도 쉽게 그림 내용을 알 수 있어서 그림을 보고 깔깔거린다. 외국인도 그렇다. 우리나라 옛 그림 가운데 나이를 뛰어넘어, 국적을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이 얼마나 될까? 이백년 후 사람들을 여전히 웃기는 《단원풍속도첩》의 힘은 무엇일까?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의 힘은 소재의 평범성에서 시작한다. 《단원풍속도첩》에 있는 25장의 그림을 보고나면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마을을 쉬엄쉬엄 한 바퀴 돌고 온 기분이다. 구중궁궐 깊은 곳이나 높직한 담 너머 깊숙한 양반집 으슥한 곳의 풍경이 아니다. 당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고 또한 생활이 많이 다른 요즘에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래서 김홍도가 선택한 장면은 그때나 지금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러나 거꾸로 익숙하기 때문에 신선하기 어렵고 식상하기 쉬운 위험이 크다. 이 지점에서 김홍도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보는 사람의 무릎을 탁 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씨름>에서는 넘어뜨리려는 사람과 넘어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마지막 힘을 쏟아붓는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였다. <서당>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장면이 아니라 훈장님에게 회초리를 맞은 후 벌어지는 다양한 분위기를 포착하였다. 결정적 순간은 익숙한 소재를 낯설게, 평범한 소재를 신선하게 만들었다. 결정적 순간에는 해학 뿐만 아니라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상이 날카롭게 포착되었다. 그래서 <타작>에서처럼 한바탕 웃음 뒤에 씁쓸한 뒷맛이 따라오기도 한다. 
결정적인 장면을 포착하는 힘은 김홍도의 힘이자 그가 살아갔던 18세 후반 조선의 힘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우연히 순간적으로 포착되기 보다는 오랜 관찰과 집요한 기다림의 결과다. 그는 단순히 곁눈질로 관찰하는 외부자에 머물지 않고 그 장면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외부자가 되기로 했다. 그림을 볼 때 끈질지게 먹이를 기다리는 맹수가 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한편 18세기 후반에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져 타인을 소재로 삼은 글이 늘어났다. 또한 집요하게 대상을 추적하고 관찰하고 지식과 지혜를 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김홍도에게 엿보인다.  
김홍도는 이 소재를 어떻게 그림으로 그렸을까? 풍속도의 크기는 대략 세로 28cm, 가로 24cm로 A4용지보다 가로가 조금 더 길다. 이 정도 크기에 결정적인 순간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는 다양한 방법을 구사했다. 이 점은 먼저 구도에서 돋보인다. 구도는 그림의 짜임새로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그림의 느낌이 달라지고 감상자의 시선이 바뀐다. 《단원풍속도첩》에서는 투수가 타자에 따라 다른 승부구를 던지는 것처럼 김홍도는 그림의 분위기에 따라 원형, 엑스자, 대각선 등 여러 가지 구도를 승부구로 활용하였다. <씨름>에서는 원형 구도를 선택해 무대를 만들고 이곳을 둘러싼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부각시켰다. 
잘 짜여진 구도는 보는 사람을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림 속으로 퐁당 빠뜨린다. 그래서일까, 《단원풍속도첩》을 보다보면 등장인물과 소품이 있어야할 딱 그 자리에 있어서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림을 보면 더이상 넣거나 덜어낼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생략이라는 방법을 과감하게 밀어붙였고 성공시켰다. <서당>에는 꼭 필요한 인물과 소품만 등장하고 다른 것들은 생략해 서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서당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많은 소품으로 채웠다면 시선은 집중점을 잃고 생생한 아이들의 표정이 빛을 잃었을지 모른다. 
그는 색보다 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선이 강조되면서 사람의 표정과 자세에 집중하기 좋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좋다. <무동>에서 춤을 추는 아이를 보면 빠른 선으로 한 다리를 올린 바로 그 순간의 정지감과 빠른 운동감을 동시에 나타냈다. 그는 선에 감정을 실어 보이지 않는 뒷모습에도 표정을 담았다. <서당> 가장 아래쪽에 등을 보이고 있는 아이의 옷을 지그재그로 묘사하였는데 보는 사람에게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훈장님에게 혼나는 아이를 보고 키득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혼나는 아이 다음 순서이기에 두려움으로 바들바들 떠는 것 같기도 하다. 
구도와 선에 이어 김홍도는 살아있는 인간 만들기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드라마 대본에 충실한 배우들 같다. 감독의 “큐” 싸인이 떨어지자 배우들은 얼굴 표정 하나, 자세 하나까지 허투로 넘어가지 않고 결정적인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열연을 펼친다. “컷” 싸인이 날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촬영을 할 듯하다. <씨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열연한다. 덕분에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형적인 인간이 아니라 고유한 개성을 지닌 개별적인 인간들로 탄생했다.    
등장인물들은 따로 놀지 않고 도미노처럼 서로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그래서 한 명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고 돌아 등장인물 모두를 살펴보게 된다. <새참>에서는 먼저 그림 한가운데 있는 크게 한 숟가락 입에 넣는 사람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바닥까지 박박 긁어 먹기도 하고 또 다소곳하게 먹기도 한다. 밥 먹는 사람을 보고나면 오른쪽 아래 여인에게 눈길이 간다. 바쁘게 새참을 내왔을 여인은 밥 먹을 겨를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중이다. 엄마에게 배고프다며 졸랐을 큰 아이는 배에 밥이 들어가자 그제야 만족한 얼굴이다. 마지막으로 밥 먹는 모습을 애초롭게 바라보는 개에게 시선이 이르면 도미노는 끝난다.  
김홍도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는 감상자를 탐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풍속도를 보는 사람들은 단지 눈으로 우아하게 감상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림을 보면서 어떤 장면인지, 이 사람은 왜 이런 표정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살피고 추론한다. 김홍도는 그림 속에 비밀을 풀어내는, 사소한 것 같지만 흥미로운 장치를 마련해 발견하고 추론하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서당>에서는 훈장님 서안 옆 회초리가, <씨름>에서는 벗어놓은 신발 두 켤레가, <타작>에서는 술병과 흩어진 신발이, <새참>에서는 밥솥만한 사발이 그 역할을 했다. 김홍도의 그림은 감상자가 적극적인 탐정이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참, 아무리 좋은 사진이라도 원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원작은 힘이 세다. 만약 원작이 전시되었다면 당장 박물관으로 달려가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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