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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서
길 위에 서서
  • 교수신문
  • 승인 2019.08.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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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애 건국대학교 KU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어렸을 때부터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를 굉장히 좋아했다. 두 갈래의 길 중에서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길을 택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훗날 한숨을 쉬면서 얘기할 것이라는 시다. 필자도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학문의 길을 택했기에, 이 시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한국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는 심리언어학을 전공했다. 심리언어학은 사람들이 어떻게 언어를 습득하고, 언어를 처리하고 이해하며, 상대방과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그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과정을 행동실험을 통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심리언어학의 길로 들어서게 해 준 지도교수님께서는 심리언어학이야말로 융합과 통섭의 학문이라고 하셨다. 인간과 언어를 대상으로 연구하지만, 그 연구 방법이 실험이기 때문에 다른 인문학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심리언어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전이라면 들여다보지 않았을 수식으로 가득 찬 통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뇌과학이 대두되면서 심리언어학과 뇌과학이 접목된 “신경언어학”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관심이 주요 연구대상이 되어 뇌를 다루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게 되고, 통계학, 컴퓨터 공학, 의공학, 물리학, 수학 등 나와 전혀 다른 분야와 그 분야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도 알게 됐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으나 앞으로의 연구를 위해서도 다양한 학문 분야와 그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그 개념이나마 어렴풋이 알게 됐다는 사실이 스스로 조금 대견하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이 내게는 또 하나의 연구 대상이자 학문의 대상이 되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현재가 앞으로의 내 연구 방향이자 융합과 통섭의 방향이라고 정의한다면 너무 건방진 생각일까? 
 아직도 다양한 학문 분야의 사람들을 알고 지내며, 정보들을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감사하게도 내가 알게 됐던 다른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은 도움을 청하는 나를 기꺼이 도와주고 정보를 교류해준다. 그들 덕분에 조금이나마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그래서 지금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을 만난 필자는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참 감사하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학문 후속 세대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 뒤에 남고 지금도 따라오고 있는 것은 연구결과나 업적이 아니라, 함께 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내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내 지식이나 학문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짙게 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적게 가는 길을 택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하는 필자의 모습은 시인의 모습과 사뭇 다른 것 같다. 한숨이 아니라 다른 이에 대한 감사함과 본인에 대한 겸손함만 남게 되는 것이 그 길을 택한, 아직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가지 않은 길 위에 서서 느끼는 전부다. 앞으로의 내 학문도 결과가 아닌 사람이 남게 되길 소망한다.  


윤신애 건국대학교 KU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연세대학교에서 신경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KU커뮤니케이션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fMRI Big data를 이용한 언어처리의 뇌신경기전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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