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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넘어 소설'…정년 앞둔 어느 교수 '이유있는 일탈'
'논문 넘어 소설'…정년 앞둔 어느 교수 '이유있는 일탈'
  • 교수신문
  • 승인 2019.08.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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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복 교수 '일탈의 변'/ 국민대 경영학부
판타지 소설 ‘빛소리1’ 비하인드 스토리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이런 면에서 사람들은 단순하게 두 부류로 갈린다. 끝까지 일탈의 꿈만 꾸든가, 아니면 실제 일탈을 감행하든가. 교수와 일탈은 기실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울려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한 주목을 끈다. 소설과는 전혀 무관하게 대학 강단에서 리더십을 강의해온 국민대 백기복 교수가 일탈치고는 큰 일탈을 감행했다. 소설 ‘빛소리1’을 출간했는데 그냥 소설도 아니고 판타지 소설이다. ‘자유’ 때문에 판타지 소설을 썼다고는 하지만 뭔가 석연치않다. 백교수의 ‘일탈의 변’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백기복 고수/ 국민대 경영학부

 경영학에서 리더십을 전공한 교수가 역사판타지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젊어서부터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라고 답했었는데 가만히 회상해보면 이런 내면적 이유 하나만으로 정년을 앞둔 노교수의 엉뚱한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여백이 많이 남는다. 소설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20여 년 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던 일들이 어떻게 ‘빛소리1’의 탄생으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1997년에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MBA학생들을 대상으로 리더십세미나를 강의하다가 난감했던 적이 있다. 리더십강의는 전통적으로 정립된 이론들을 설명하고 나서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관례이다. 케네디, 링컨, 마샬 등의 사례들을 설명하는데 미국학생들 중 한 명이 손을 들더니, “이들의 사례는 우리가 유치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외국인교수에게서 또 들으란 말인가? 당신네 나라에는 훌륭한 리더가 없나? 그들의 얘기를 소개해 달라.” 우리는 언제부턴가 외국의 사례에 중독되어 있다. 리더십서적 대부분이 번역서이고 이론의 99%는 영어권에서 발표된 것들이다. 이 사건 이후 한국리더 사례들을 찾게 되었다. 


‘이슈리더십’의 표상 세종대왕 몰두 

 마침 그때 나는 새로운 리더십이론을 설계하는데 천착하고 있었다. 리더란 ‘시키는 것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를 찾아 차이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취지의 ‘이슈리더십이론’(2000년)이 그것이다. 매력적 이슈를 창안하는(initiate)사람이 리더로 떠오른다는 증거는 많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세종대왕을 선정했다. 세종실록을 읽기 시작했고 2007년에 ‘대왕세종’이라는 책도 내게 되었다.  이 책은 집현전학사 10명과 세종사이에 있었던 일화들을 정리한 책으로 다 읽고 나면 세종의 리더십이 어떠했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몇 년 전부터는 세종리더십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을 시작했다. 우선 리더가 처리하는 이슈들을 일상적 이슈(매일 반복되는 이슈들), 사건적 이슈(어쩌다 발생하는 비정형 이슈들), 창의적 이슈(리더가 창안한 이슈)로 구분하고 세종대왕 32년 동안에 발생한 이슈들 30,278건을 전수 분석했다. 분석결과, 창의적 이슈가 13.2%, 사건적 이슈 24.6%, 일상적 이슈 55.6%, 비관련 6.6% 등으로 나타났다. 천재 세종은 열에 하나 남짓 정도 새로운 일을 벌여 그처럼 큰 성과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백분율이 어떤 수준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비교대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조실록을 전수 조사하여 비교하였다. 세조의 경우, 총 10,780건 중에서 창의적 이슈가 3.8%, 사건적 이슈 28.8%, 일상적 이슈 63.8%, 비관련 3.5%로 나타났다. 이렇게 볼 때, 세종이 처리했던 일들 중 13.2%가 자체개발한 창의적 이슈였다는 것은 당시 왕의 역할이 매우 다양했음을 고려할 때 이슈리더로서 매우 의미 있는 비율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 논문은 영문으로 작성되어 미국학술전문지에 제출할 예정이다.


거열형당한 사육신 영혼 치유 소설 집필
 이 연구는 많은 부산물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세조실록을 읽으면서 사육신기사를 중심으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동인(動因)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조실록은 세종실록과 다르다. 일단 매일 매일의 기록이 세종실록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짧다. 토론도 많지 않고 사안에 대해서 치밀하게 분석된 보고도 별로 없다. 사육신거열 장면도 그렇게 자세히 기록되어있지는 않다.

 세조 2년, 푹푹 찌던 1456년 음력 6월 8일(양력 7월 10일), 오늘의 서울 프레스센터근처 군기감 앞마당에서는 역모자들의 거열형이 시행된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우선 그 잔인함이 충격적이었고, 사지가 뽑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당당했다는데서 전율을 느꼈으며,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 별로 다뤄지지 않았다는데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가해자는 살아남아 모든 기록을 장악했지만, 피해자들은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허망했다. 가해자들은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피해자들은 위로받을 곳이 없었다는 점이 또한 슬프게 한다. ‘빛소리1’은 피해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바로 세우기 위해서 쓴 소설이다.


역사속 피해 영혼들 위해 계속 집필  
 물론 사육신 뿐 아니다. 우리의 역사는 온갖 피해자들로 넘쳐난다. 역사에 널브러져 있는 모든 피해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바로 세우는 ‘빛소리‘ 후속 편들을 계속 쓸 것이다.
 결심은 섰는데 어떻게 쓸 것인가?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템포를 빨리하고 사건을 기대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하여 흥미를 더 한다는 것이다. 설명이 많은 소설, 사건전개가 뻔한 소설은 지루하다. 둘째는 상상에 한계를 두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항상, 왜 우리나라에서는 ‘반지의 제왕’, ‘어벤저스’, ‘해리포터’ 같은 작품들이 나오지 못할까 불만을 가져왔다. ‘빛소리1’에서는 거리낌 없이, 막힘없이 상상의 나래를 폈다. 이런 원칙을 세웠음에도 막막했다. 그 내용이 복수가 되었던 용서가 되었든 간에, ‘위로’와 ‘바로 세움’을 하려면 우선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게 해야 한다. 죽음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게 갈라놓는다. 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영적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빛소리1’은 사육신 거열에서 시작하여 하늘나라 영혼들의 이야기로 전개했다. 


영혼의 세계 묘사위해 단테 신곡 참고
 하지만 영혼의 세계를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단테의 신곡을 많이 참고했다. 이 서사시에서는 아홉 단계의 지옥을 설정했지만, 너무 많고 재미가 없다.  다만 신곡에서 한 가지 배울 점은 죄와 벌을 유형화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흑곡”(黑谷)이라는 지옥을 상상해냈고, 네 개의 무저갱을 만들어 죄의 유형에 따라 배치되는 것으로 정리했다.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폐혼’(廢魂)이라 했고, 천국에 속한 영혼을 ‘진혼’(眞魂)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폐혼들은 신곡에서처럼 자신의 죄에 합당한 벌을 받으면서 서로 대화나 하면서 지낼까? ‘빛소리1’에서는 죄의 본질을 서로 공격하고 갈등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봤다. 그래서 신곡과는 달리, 빛소리1의 폐혼들은 벌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영혼들을 헐뜯고 공격하고 파괴하려는 속성을 보이는 존재로 규정했다. 흑곡은 싸움 잘 날 없는 참혹한 곳이다. 빛소리1은 그 전모를 그린 소설이다. 그 안에서 피해자 사육신이 가해자 세조의 영혼을 만나 어떻게 맺힌 한(恨)을 풀어낼까?  

 사실 흑곡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상징한다. 갈등과 투쟁과 욕설이 난무하는 이 세상은 흑곡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도 이 어둡고 참담한 세상을 밝혀줄 희망의 등대가 있다면, 신이 점지한 진혼들이 아니겠는가? 이들이 우리민족을 ‘빛과 소금처럼 지켜 주리라!’ (빛⦁소⦁리)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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