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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마드-연구자의 생활감정서
한 노마드-연구자의 생활감정서
  • 교수신문
  • 승인 2019.08.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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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옥경 문학박사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음악학으로 박사를 했다. 한국 전통음악 갈래에 드는 음악 양식과 함께, 음악을 통한 당대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양옥경 문학박사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음악학으로 박사를 했다. 한국 전통음악 갈래에 드는 음악 양식과 함께, 음악을 통한 당대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명철의 세계에 발을 들이자, 수없이 길을 잃었다. 말하자면 나의 탐구심과 실천력의 자극제는 주로 ‘우리 예술’이라고 불리는, 대체로는 한국 전통예술이 부르는 그것이다. 내게 특별히 민족주의 성향이 있다거나 남다른 감수성이 있어서 때문은 아닌 듯 하고, 태생적으로 잘 조직화 하고 윤을 낸 시청각 기제에 반응이 빨랐고, 그 중에서도 ‘한국’과 ‘전통’이 그 앞에 붙는 예술 양식들에 깊이 매혹되었다. 먼저 실기 학습을 통해 온몸으로 체감하는 나날을 보내는 속에 이 짧은 예술 양식들에 어떻게 그 많은 사피엔스의 감정이 흐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얻었고, 더 알아서 명료한 언술과 텍스트로 설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삶은 연구자에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기막히게 좋았던 판소리, 민요, 풍물 굿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외계의 생물인양 낯설고 패배감만 안겨주는 존재들로 역전되었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바꾸었다. 바로 ‘탈출(졸업-학위)’로 맘을 굳혔던 것이다. 결국 전쟁과 같은 시간을 보냈고 결과는 어쨌거나 ‘탈출 성공’이었다. 얼마가지 않아 새로운 각성이 일었다. 이제 공부는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명분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매우 미숙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내 스스로가 새로운 책임감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과의 진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나 스스로도 그리고 밖(사회)에서도 연구자라고 소개하는 시간을 살고 있다. 딱히 정착지는 없으니 그런대로 운치있게 노마드-연구자라고 자칭하자. 빛나는 성취는 아니지만 시작과 맺음을 반복하며 KRI(한국연구자정보 시스템)에 차곡차곡 데이터로 축적되는 과제 여럿을 수행하가며 살고 있다. 나의 공식적인 전공분야는 우리나라 학제 구분에 따르면 ‘인문예술분야>예술체육학>음악학’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나는 이런 구분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다. 대신에 자연스럽게 내 일상 전체가 연구와 연동된 삶을 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불문하고 당대 사람들의 생각, 취향, 스타일, 생활 습관 등 그야말로 사피엔스의 인생방식 모두가 내 조망권에 있는 여행지이자, 미지의 세계에 사는 파랑새이다. 정착하지 못했기에  노마드 연구자가 되어 자주 거처를 옮길 수 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하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생각해 보면 문화예술 분야에서 연구자로 사는 것 자체가 유랑자의 멘탈리티로 사는 것이 기본이기도 하다. 여비야 늘 부족하지만, 충만한 호주머니가 머리는 따듯하고 심장은 차갑게, 발은 둔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며 물질적 결핍을 낭만적으로 전환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물론 절대 궁핍이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절대 궁핍의 상황은 사고력과 의욕 모두를 앗아갊으로써 탐구하는 인간을 만들지 못한다. 문제는 바로 이 디테일에 있다. 대저 생활인으로서의 연구자가 가능할 만큼의 조건이 어느 정도며 최적의 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당장은 내게 그 답을 내 놓을 재간이 없다. 

상황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식이야 내게 없겠는가마는, 또 연구자를 위한 정책이 연구 환경 나아가 학문적 기반 안정화에 또 지속적 성장에 직결이 된다는 주장 정도야 왜 할 수 없겠는가마는 이 방면에서 쓸만한 해결 방안을 모색할 재간이 없으니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 않을 테다. 대신에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독립적인 연구자가 될 것을 선언하면서 내건 메니페스토 (자작(自作)한 설계도와 지도를 품고서 떠날 곳을 정하고, 짐을 꾸리고, 티켓을 발행하고, 선로 위에 앉히고, 심지어 떠날 때는 알지 못했던 정착역을 발견하는 일까지 이 모든 과정이 유랑하는 연구자의 프로세스고, 스스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대로 행하며 살 것이다. 현재로서는 끝나지 않을 이 여행 궤도 안에서 침묵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즐길 줄 알며 그렇게 내 시선이 좀 더 포괄적이 되어가길 갈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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