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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안연선 지음, 삼인 刊)
주간리뷰 :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안연선 지음, 삼인 刊)
  • 오장미경 성공회대
  • 승인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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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와 허스토리의 교직

오장미경 / 성공회대·사회학

이 책은 199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론적·실천적 관심으로 떠오른 일본 식민지체제에서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를 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그간 우리 사회에 있었던 다양한 시각들을 정리하면서 성과 식민주의, 군국주의를 통합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위안부문제를 보는 시각은 그간 민족주의의 시각(일본 민족주의와 한국 민족주의의 시각), 객관주의적 역사학의 시각, 여성주의적(성 지향적인 관점, 여성주의 운동지향적인 관점)인 시각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시각들 각각은 성, 식민주의, 군국주의 요소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거나 각 요소들이 분리된 것으로 파악하는 결함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 속에서 저자는 각 요소들을 통합적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이러한 시도는 일정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즉 위안소 제도는 식민주의와 가부장제의 얽힌 관계 속에서 발생했고, 군사주의적 남성성과 노예화되고 성적 대상화된 여성성 개념의 실천에 근거해 강화됐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위안부와 일본 병사의 내면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존재했던 위안부와 일본 병사들이 위안부체제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규정하고 자리매김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본 병사들이 위안소를 이용하면서 가졌던 느낌들,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합리화 기제들이 깊이 있게 다뤄지고 있다. 저자는 사실적 기술을 통해 피해자로서의 한국 위안부와 가해자로서의 일본 병사들이 어떻게 정체화됐고 재생산됐나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 책은 또한 구술연구 방법론이 보여줄 수 있는 이점을 잘 보여준다. 저자가 구술대상을 만날 때의 느낌, 그들과의 교감 형성, 이야기의 물꼬 트기 방법 등을 선명하게 기술하며, 특히 한국인 젊은 여성이 나이든 한국인 여성을 대할 때와 나이든 일본인 남성을 대할 때 구술자와 연구자간에 형성되는 권력관계의 작용과 긴장감을 생생히 보여준다.

"타국에서 그곳 사람들과 위안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내 안에 편안히 들어앉아 있던 민족주의적 시각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었다"-저자 서문에서

한국인 여성 위안부와 일본인 남성 병사라는 아주 극단적이고 서로 적대적인 관계 속에 있었던 두 구술자들이 사실을 기억하는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다. 이를테면 한국인 위안부가 매우 치욕적이고 끔찍한 일로 기억하는 위안부 폭력은 일본 병사들에게는 연애관계로 기억되거나,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한 비즈니스였으며, 위안소 체제의 경우는 아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구술됐다. 이 때문에 구술연구 방법론이 더 매력적이다. 더욱이 일본 병사들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국주의적·남성적 우월성과 군사주의적 사고 속에 갇혀 과거의 행태를 정당화하거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과거가 과거사실이 단지 과거에 그치지 않고 현재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구술연구, 역사연구의 현재화 측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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