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20 15:47 (금)
화제의 새 책_『자화상을 통해 본 화가의 심리세계』(이병욱, 학지사)
화제의 새 책_『자화상을 통해 본 화가의 심리세계』(이병욱, 학지사)
  • 허정윤
  • 승인 2019.08.19 0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가와 그 시대의 내면이 보이는 창-자화상
『자화상을 통해 본 화가의 심리세계』(이병욱 지음, 학지사, 320쪽, 2019.07.15)

 많고 많은 작품 아이템 중에 왜 하필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렸을까? <자화상을 통해 본 화가의 심리세계>는 저자 이병욱(전 한림대 교수)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독자는 이 질문에 저마다 한 번쯤은 본 적 있는 화가들의 자화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기 마련이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부터, 뭉크와 애곤 쉴레가 활동했던 20세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가 자신의 작품만큼이나 강렬한 자화상을 남겼다.


 동양에서 자화상은 그리 환대받는 주제는 아니었다. 반면 인본주의가 우선한 서양에서는 자의식이 뚜렷한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가 많았고, 화가들은 이를 통해 자신의 심리를 솔직히 드러냈다. 저자는 “자화상을 남긴 화가도 그런 감정의 공유를 기대하고 자신의 내면을 과감하게 드러냈을 것”이라며 자화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정신의학과 교수를 역임한 저자는 화가의 초상화를 통해 그들의 외로움, 열등감, 불안감 등을 쉬운 말로 면밀하게 분석했다. 저자의 말처럼 초상화 속 화가들은 아무 말이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과 표정, 자태를 통해 진솔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성 바르톨로메오의 손에 매달린 처참한 몰골의 희생자에 주목했다. 굳이 자화상이 아니더라도 미켈란젤로가 작품 속에 자신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이 처한 비극적인 현실을 드러냈음을 주시했다. 가죽만 남아 너덜너덜해진 채로 들려 있는 모습은 표현이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그 당시 미켈란젤로 자신을 최대한도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자조적인 화풀이인 셈이다.


 화가들의 자화상을 통해 시대를 읽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18세기에 활동한 프랑스 화가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브룅이 남긴 자화상 변화를 통해 격동의 프랑스를 엿볼 수 있다. 르브룅은 당시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이 돼 왕가의 총애를 받았다. 자화상 속 르브룅의 아름다운 용모와 단아한 모습은 그녀의 온순한 성격을 드러낸다. 르브룅이 30대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프랑스 혁명 전에 그녀가 느꼈던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통치 기간을 지낸 르브룅 자화상에서는 예전과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왕당파로 낙인찍힌 삶을 사는 그녀의 50대를 그린 자화상에서 예전의 미소는 찾기 힘들다. 르브룅의 자화상은 <자화상을 통해 본 화가의 심리세계>의 표지이기도 하다.


 화가들의 자화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어둡고 우울한 표정이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왜 그들은 한결같이 불행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을까” 묻고 정신분석학적 해답을 제시한다. 우울한 표정의 자화상을 남긴 화가 대부분은 가난과 우울 속에서 고통받았지만, 그 순간에도 화가들은 자신을 화폭에 담으며 위안 삼았을 거라는 게 저자의 통찰이다. 예술가는 일반인보다 감수성이 민감하고 욕망과 현실적 한계 사이에서 더 큰 갈등으로 시달린다. 저자는 “행복한 인간은 결코 몽상하지 않는다. 오로지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만이 몽상에 빠진다”던 프로이트의 말을 인용하며, 실제로 생전에 부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산 사람치고 창조적 예술가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역설했다. 피카소도 화가로는 부귀영화를 누렸을지 몰라도 사생활 부분에서는 행복하지 못했다.


 저자는 “천재 화가들일수록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남다른 고통과 갈등을 겪었으며, 그 해소책으로 수많은 자화상을 남긴 것”이라며 “그들의 자화상을 통해 창조적 주체인 화가들의 은밀한 내면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고, 시대적 간격을 뛰어넘어 인간적 고뇌의 승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책은 그 시대 큰 족적을 남긴 35인의 화가들을 자화상 중심으로 전개된다. 해당 화가의 자화상 몇 점만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그가 당대에 남긴 유명한 작품을 통해서도 화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