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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동향_국내 : 르네상스 트렌드
출판동향_국내 : 르네상스 트렌드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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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중세'에 발디딘 문명의 시간

최근 르네상스를 다룬 책이 3권이나 연달아 출판됐다. 르네상스의 캐논인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푸른숲 刊)가 1999년에 나왔으니 거의 4∼5년만에 르네상스 트렌드가 형성되는 것 같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책으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킹스 칼리지의 명예교수인 리사 자딘의 '상품의 역사'(이선근 옮김, 영림카디널 刊)가 있고, 미주리 컬럼비아대 역사학 명예교수인 찰스 나우어트의 '휴머니즘과 르네상스 유럽문화'(진원숙 옮김, 혜안 刊)가 있다.

예전의 르네상스 해설서들이 인문주의를 동경하고 환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면, 이 즈음의 책들은 르네상스 시대가 밟고 올라섰던 '암흑의 중세'에 대한 새로운 주목 때문에 나오고 있어 다소 역설적인 느낌을 준다. 나우어트는 르네상스가 상당 부분 중세 지식인들의 덕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흔히들 중세는 모든 창의성을 봉쇄당한 암흑기인 걸로 알지만, 저자는 중세에도 고대 그리스의 인문주의가 맥을 잇고 세련화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은 르네상스가 평지 돌출한 인간 해방공간이라는 부르크하르트 이후의 역사단절적 시각을 상당 부분 수정하는 것이다. '상품의 역사'에서 리사 자딘은 르네상스 시대의 졸부들이 어떻게 진귀하고 이국적인 상품을 통해서 자신들의 자아를 경쟁적으로 과시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고전 학문의 부활, 위대한 예술가들의 탄생의 공간이 아니라 물질문명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의 현장으로 르네상스를 조명하고 있어 지적 탐험의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서구 학계에서는 이미 1940년대 후반부터 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험이 지속돼왔고, 그것이 미국에서 신역사주의라는 하나의 역사이해 방법론까지 형성하기도 했다. 맑시즘을 해체론과 결합시킨 신역사주의는 1990년대 후반 스티븐 그린블래트나 폴 해밀턴, 프랭크 랜트리키아 등의 저술을 통해 이미 국내에 그 이론이 소개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이나 부르크하르트의 책이 출간됐을 때와 같은 학문적 관심을 이 책들이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좀더 내밀하게 르네상스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은 마련해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6월 임영방 교수가 펴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문학과지성사 刊)은 국내 학자가 르네상스라는 복잡한 시기를 종합적인 시야에서 정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의 일련의 르네상스 저작 이후 근 10년이 넘어서 나온 폭넓은 책이다. 서구 미학과 비평이론을 체계적으로 사회문화적 배경을 구체적 경로를 따라 밝혀나가는 등 치밀한 서술이 돋보인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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