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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해법 새 대안 ‘공공외교’ 주목
한일 갈등해법 새 대안 ‘공공외교’ 주목
  • 김범진
  • 승인 2019.08.0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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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국 정부 아닌 상대국 국민 대상으로 펼치는 외교
4强에 둘러싸인 한국, ‘강대국 질서’ 깰 새로운 외교
일본 시민에게 다가가 한국 입장을 설명하려는 외교가 전혀 없었던 것은 반성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상호의존’과 ‘상호공생’으로 반세기 간 축적해 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상호의존’과 ‘상호공생’으로 반세기 간 축적해 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한·일 양국간의 적대적 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과거사 갈등의 해법으로 공공외교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에 따르면 공공외교란 ‘상대국의 정부가 아니라 상대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외교’를 뜻한다. 김 교수는 “한국이 하드파워상 세계적으로 대략 10~15위권을 차지하지만, 소위 4강(强)에 둘러싸인 동북아시아에서는 상대적 소국으로서의 불리함이 있는데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공공외교”라고 설명한다. 요컨대 기존의 ‘강대국 질서’를 깰 수 있는 새로운 외교라는 것이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지난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본 안에 아베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한·일 관계, 역사문제가 되면 이들도 전부 아베와 같은 입장이 돼 버린다”며 “우리 외교가 일본의 정치지형을 고려해서 일본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 시민에게 다가가 우리 입장을 설명하려는 외교가 전혀 없었던 것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일본 아베 정권은 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해 지난 과오를 인정할 기미가 없고, 이는 일본 내 권력교체가 없는 한 양국 정부차원의 갈등해결은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정부 간 실익 없는 반목을 계속하기보다 공공외교를 통한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대안이 제시되는 이유다.

남기정 교수는 “우리가 중심과제로 설정해야 될 것은 아베와는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민주당계, 노조, 평화헌법 지지자 등 이른바 ‘제도적 자유주의자’들이 우리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뒤 “위안부 합의 (파기) 문제와 대법원 판결 관련한 그동안 한국의 행동은, 우리 입장에서는 정당한 요구지만 그들에게는 합의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으며, 아베 정부는 그간 일제 강제동원에 관해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들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모두 마무리됐다”고 주장해왔다. 남 교수에 따르면 이는 한국이 일본 국민의 시각에서 약속을 어긴 나라로 인식되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간 언론보도에 따르면 개인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아베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1991년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 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켰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이에 대해선 “강제징용 피해자 등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은 현재 국제인권법상 상식”이라는 견해도 있다.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은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의 입장이기도 하다.

강병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국제법 교수는 23일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재판으로서 청구할 수 없도록 제소 능력을 박탈하는 내용에 합의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이다”고 밝힌 뒤 “이를 근거로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 니시마쓰 건설에 대해 배상을 청구한 사건의 판결에서) 패소 판정을 받았고, 일본은 한국이 국제법 위반행위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그 조약의 당사국이 아니다. 아베가 달리 주장하고 있을 뿐, 일본 최고재판소와 우리 대법원의 견해는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이와 관련 “그러니까 이건 아베의 정치적 술수라고 해도 좋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과는 더 이상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어갈 수 없다. 그리고 안보면에서 관리가 돼야하는 물자들을 혹시 유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심이 간다’는 식으로 엮어서 한국을 공격하고 거기서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의 공공외교가 집중해야 할 부분이다. (강제동원 관련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부인하고 ‘오히려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 내용을 재확인하고 명확히 하자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 청구권협정은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우리 주장을 일본은 ‘동의하지 않는데 동의한다’는 독특한 1965년 체제를 만들었다. 이것이 그간 한·일 관계 불안정성의 근본 원인이었고, 그러니 이 문제를 안정화시키는 방향에서 노력을 하자는 게 남기정 교수의 요지다.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일본의 주장은 강제동원 역시 식민지배 하의 합법이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따라서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이유가 없고, 여태까지 배상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최근 강제동원 관련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한·일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 즉 이는 다시 말하면, 일본 역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남 교수는 “이러한 점을 치고 들어가서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일본 국민들을 상대로 그런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노력이 덜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8년 일본 치바현에서 열렸던 제2차 한일시민 100인 미래 대화. 제3차 대화는 올해 11월에 예정돼 있다. 사진=한국국제교류재단 제공
지난 2018년 일본 치바현에서 열렸던 제2차 한일시민 100인 미래 대화. 제3차 대화는 올해 11월에 예정돼 있다. 사진=한국국제교류재단 제공

남 교수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관한 공공외교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도 나름대로 상당한 노력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제주 서귀포시, 일본 치바현에서 각각 1번씩 개최된 ‘한일 시민 100인 미래 대화’가 그 대표적 예다. 한일 관계 전문가, NGO 활동가, 일반 시민 등 양국에서 각 50명씩 총 100명이 참가해 시민사회 수준에서 협력할 수 있는 의제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협력의 틀을 만드는 노력을 해왔다. 그에 앞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써 ‘국민외교 및 공공외교를 통한 국익 증진’을 선정하기도 했다.

남기정 교수는 이를 두고 “양국간 역사나 정치 대립을 여타 협력할 수 있는 이슈로 이끌어간다는 발상이었기 때문에 역사 혹은 정치 문제는 정면에서 다루지 않았고 그건 옳은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시민사회에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것 말고, 일본 국민이 한국을 이해하도록 일본 국민에게 한국 입장을 설명하려고 하는 노력들을 선도적으로, 적극적으로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이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선거용 ‘정권 때리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강병근 교수는 “청와대가 일본의 제안을 받는 순간 산케이 등 일본 언론은 ‘아베의 승리이며 정의가 세워졌다’라고 대서특필할 것이고, 그렇다면 내년 선거에서 여당이 진다는 걸 청와대가 모를 리 없다”고 전제한 뒤 “이제 이 문제는 법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갔고, 야당은 내년 선거를 위해 현재 정권에 흠집을 잡으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범진 기자 j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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