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쇼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종류의 글쓰기를 한다. 하나는 문학적·철학적 글쓰기(정체로 쓰임),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야기’라고 부르는 글쓰기(볼드체로 쓰임)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블랑쇼의 죽음을 넘어서는 시도를 본다. 서로의 죽음에 노출되어 그 공포 속에서 사는 삶과 삶의 한계를 인지하며, 블랑쇼는 ‘우정’을 그 공포로 인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대화에서의 언어가 주는 선물로 파악한다. 영원히 손을 내밀지만 항상 조금 늦는, 타인을 구하기엔 부족하나 이미 서로를 잃는다는 공포로 고통받는 우정. “죽어가면서 너는 죽지 않는다”라는 진술이 가능해지는 것도 이 익명적인 우리(On/Nous)의 죽음 안에서다. 왜냐하면 죽는 것은 네가 아니고, 우리가, 익명적인 우리가, “너와 함께 너 없이” 죽기 때문이다. 이 익명적인, 공통의, 고독 속에서 블랑쇼는 파스칼에 반해 "우리는 홀로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블랑쇼가 말하는 ‘밝힐 수 없는 공통체’ 안에 통합되는 익명적 글쓰기로서의 단편적인 글쓰기, 『저 너머로의 발걸음』은 자신이 가진 거리/한계를 줄이고 넘으면서 새로운 거리와 한계를 여는, 그 자신이 도약의 내용이면서 형식이 된다.
모리스 블랑쇼 지음 | 박영옥 옮김 | 그린비 |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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