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은 1584년 정월 16일에 병으로 서거했다. 그러니 1583년은 사실상 율곡 이이 생애의 마지막 1년이다. 1583년, 율곡은 병조판서로서 새해를 맞이하였다. 연초부터 두만강 주변에서 여진족들이 대규모 침범을 하였다. 조선에 지속되던 평화의 시기가 끝나고 이민족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서까래와 들보가 부패하여 언제든 무너질 것 같은 낡고 큰 집, 기력이 쇠잔한 노인의 근근히 이어지는 숨결 같은 상태가 율곡이 진단한 당시의 국가 상황이었다. 율곡의 일생 소망과 지향은 성리학적 진리 사회의 구현에 있었다. 오늘 우리가 성리학 체계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율곡의 판단과 실천은 그의 시대 상황에서 최선의 것, 곧 전체(全體)이며 대용(大用)의 체계였다. 그는 참 유자[眞儒]는 안으로 성인의 덕과 밖으로 제왕의 도를 겸하여 갖추어야 하며, 때가 주어지면 나아가 그가 배운 도를 시행하고, 물러서 향촌 산림에 있게 되면 연구, 저술, 교육에 종사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고 하였고, 일생 이 말을 스스로 실천하였다.
곽신환 지음 | 서광사 | 4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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