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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21)-미생에서 완생으로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21)-미생에서 완생으로
  • 교수신문
  • 승인 2019.07.2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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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불쌍한 젊은이들

방송에서 직장생활을 주제로 현실감 있게 연출하는 것을 보고 색다르다고 생각했더니, 원작이 만화였다. 알 사람은 아는 ‘미생(未生),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다. 

연출자가 누구인지, 사무실도 기존 사무실에 연기자가 투입된 것처럼 완벽해 보였다. 건물 옥상은 지금은 망했지만 당시 잘 나가던 대기업을 배경으로 했기에 실감났다. 거기에 나오던 ‘오 과장’은 직장인들에게 ‘어떤 인물이 믿음직한가?’라는 질문에 초대되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경영학에서 흔히 묻는 ‘도덕성’과 ‘능력’ 그리고 ‘신임’(‘신뢰’와는 조금 다르다)이라는 문제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미생은 바둑 용어로 집을 아직 짓지 않아 살아있다고 볼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 반대가 완생(完生)인데, 전문용어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일본식 조어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태어나기 이전이라는 뜻인데 바둑알은 이미 태어났기 때문에, 어법상은 잘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태어나기 이전’(미생이전未生以前)이라는 뜻으로 미생이란 말을 쓴다. ‘미생’과 ‘이전’이 중복되면서 강조되는 것으로 우리 ‘역전(驛前) 앞’과 비슷하다. 

원작만화에는 매회 첫 장에 기보(棋譜)가 있다. 그래서 바둑판과 바둑프로입단에 실패한 계약직 ‘장그래’의 상태를 비교시킨다. 바둑을 잘 모르지만, 바둑판 그림마다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몇 번씩 되돌아가면서 보았다. 바둑의 행마(行馬)가 주인공의 처지와 향방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보고 싶었다. 대국은 실제 있었던 것이다. 조훈현 9단과 녜웨이핑 9단이 벌인 제1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결승이었다. 박치문이 매수마다 해설을 넣었는데 영어판도 책으로 나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착수: 텅 빈 바둑판은 요염하게 빛나고 그 위로 폭풍전야의 정적이 흐른다.’(Start: The empty board shines sensusously and the calm before the storm flows over it.) 원작자의 성실함과 문학성에 깜짝 놀라 찾아보았더니 영화화된 만화가 하나둘이 아니다. ‘이끼’, ‘내부자들’ 등등. 

며칠 전 로비가 2, 3층 규모의 도서관으로 장식된 대학의 로비에 앉아있는데 바로 옆에 미생 만화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그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공연히 영어책으로만 꾸며있는 줄 알았는데, 묵직한 베스트셀러 안에 만화가 끼어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미생은 우리시대의 청년과 그에 대한 지지를 담는다. 무슨 이야기인가? 젊은이들은 절망적이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야릇한 원망감과 더불어 그들의 분노는 사회화되지도 못하고 개별화되어 내면에서 쌓이고 있다. 

얼마 전 강연을 갔다가 젊은이들이 말하는 ‘노~력’(그냥 ‘노력’이 아니다. 꼭 길게, 그것도 약간 낮춰서 말해야 한다.)과 ‘시발비용’(始發費用)을 다들 몰라 설명해주었더니, 깜짝 놀란다. 수년 전 학회에서 청년의 문제를 말하면서 사회운동가를 초청했는데, 잘난 척하자면, 자칫 나 아니었으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 뻔했다. 맥락상 일반어법에서 말하는 ‘노력이 부족해서 취직이 안 된다’거나 ‘새롭게 시작하려면 돈이 든다’(시드머니처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힘내라’거나 ‘대한민국 청년만세’라는 말은 젊은이들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헛되게 들린다.  

지금서야 알았는데 미생 시즌2가 나왔단다. 과장에서 승진했던 눈 빨간 오 차장이 설립한 회사에 들어간 장그래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하다. 

우리 청년들 불쌍하다. 기성세대가 지녀야 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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