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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강화로 내실기대…'공격수'를 내세워라
토론 강화로 내실기대…'공격수'를 내세워라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9.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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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변화해야 산다 : 학회들의 학술대회 활성화를 위한 사례들

지방 모 대학에 있는 김 아무개 교수는 요즘 통 학회에 참가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열띤 토론도, 새로운 주제도 없기 때문이다. 동료 연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걸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 학회를 열성적으로 꾸려나가는 교수들도, 학회가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인문사회 분야일수록 이는 심각하다. 이공계 쪽 학술대회는 최신 담론을 주고받기라도 하지만, 인문사회 쪽은 이런 기초적 참가의의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에  대해서는 그 동안 문제제기
가 많았다.

열띤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는 학회들

사실 토론이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은 간단하다. 분명한  주제의식에 기본적인 학문적 소양이 있는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만 확보할 수 있다면, 토론은 저절로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조건이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좀처럼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행사에서 고답적인 형식을 벗어난 사례들도 있다. 

지난해 서강대 인문사회연구소와 하와이대 한국학센터가 주최한 국제한국학 심포지엄 '한국사의 새로운 지평'이 하나의 사례가 된다. 외부인사 참여 없이 여성사와 지방사  연구자들만 이 참석한 이 학회는 3박4일의 일정으로 진행됐는데 발표자에게 오직 1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대신 발표자는 모두 동시에 토론자가 돼는 1인2역 형식을 취했다. 모든 발표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발표보다는 토론에 의의를 두는 진행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외부인사를 따로 챙겨야  될 필요도 없으니, 식사나 휴식 같은  부대적인 것들은 양해를 구하고 발표와 토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형식 파괴를 통한 질적 상승 전략은 아주 드문 일이다. 바쁜 연구자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부터 말 그대로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사가 소규모일 때 가능한 일이지만 발표자 수를 줄이는 대신 토론 시간을 대폭 할애했던 학술대회도 있다. 지난해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서 열린 '국민국가의 언어와 문화' 연속 세미나를 예로 들어보자. 사흘간 열린 행사에서 발표자는 단 5명뿐이었다. 하나의 발표주제에 할당된 시간은 3시간인데 1시간  발표에, 토론이 2시간이었다. 이때  만든 발제문은 A4 한 장 가량의 요약문으로 연구자가 구두발표를 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토론은 애초에 정해진 2시간을 넘어 4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대규모 대회에서는 머릿수를 줄이는 게 좀 어렵다. 많은 참여의 기회를 주려다 보니 그렇다. 이럴 때는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경향이나  주제, 새로운 방법론 등을 살필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학술대회를 이용하자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토론의 실속을  챙길 방법도 없지는 않다. 보통 학회 개최일은 1년 전에 공지하지만, 실제 준비기간은 이보다 훨씬 짧다. 발표문을 받은 지 3일 내에 논평문을 제출하라는  경우도 있으니 제대로 된 토론요지가 마련될  리가  없는 꼴이다. 이렇게 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인력 부족도 부족이지만, 소요경비를  확보한 후에야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영 건국대 교수(사학)는 "학술진흥재단 등 지원기관에서 지원여부 발표를 수개월만 앞당겨 조정한다면,  발제와 논평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과는 나와봐야 알지만 이것도 방법이다.

발표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라인 상에 미리 발표논문을 게재하는 학술대회도 있다. 지난 21일 열린 '국사의 해체를 향하여' 심포지엄은 미리 발표논문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참가자들에게 미리 읽어올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발제는 3분으로  제한해 나머지 시간은 모두 토론으로 할애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조건이 마련되더라도 내부의 적이 남는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끼리 어떻게 경직된 얘기를 주고받겠냐는 것. 신랄한 비판이  오가는 것을 근원적으로 피하는 학문 풍토가 문제라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논평자와  토론자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는 학회들이 늘었다. 의욕 있는 젊은 학자들을 '공격수'로 내세워 질문을 던지거나, 발표자와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는 학자를 토론자로 섭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도는 좀처럼 현실화되지 않는다. 이런 소프트웨어 차원의 변화시도는 구조적 여건변화와 맞물릴 때 실효를 낼 수 있기 마련인 것이다.

학술활동 여건 변화 뒤따라야 효과 기대

요즘 학술대회는 "세미나가 아니라 재미나"라는 등 우스개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하지만 학술대회가 교수들의 대표적 학술활동의 하나인 만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유는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고, 크고 작은 혁신 시도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 김에 학술대회  정상화를 위한 세미나를 학회연합으로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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