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8-23 16:57 (금)
역사에서 찾는 인종차별에 대한 분석적 고찰
역사에서 찾는 인종차별에 대한 분석적 고찰
  • 교수신문
  • 승인 2019.07.23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제의 새 책_『낙인찍힌 몸: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염윤옥 지음, 돌베개, 448쪽, 2019.07)

왜 어떤 몸은 아름다움의 척도가 되지만, 어떤 몸은 비하 대상이 되는가? 나아가 미와 추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별과 박해를 받는가? 저자 염운옥이 인종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몸을 둘러싼 규정과 편견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사논문 주제였던 우생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몸에 등급을 매겨 제한을 두는 발상에 분노했고, 이를 좀 더 깊게 보기 위해서는 그중 열등하다고 분류된 유색인종의 몸과 이데올로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여겼다. 10여 년 전 가졌던 의문이 소논문들과 몇 편의 글로 조금씩 풀려가는 동안 한국사회에서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는 변주를 거듭하며 거세졌고, 책 작업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묻자. 인종주의란 무엇인가. 인종주의는 타자의 ‘행위’가 아닌 피부색, 머리카락, 골격, 두개골, 혈액 등과 같은 생물학적인 속성에 근거해 인간을 규정짓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기반해 보이지 않는 것을 결정하며, 이 과정에서 몸에 대한 담론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 인종화의 속성이다. 이 역사의 시작은 16세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낙인찍힌 몸』은 혈통을 의미하던 인종이 어떤 연유로 인간 분류의 하위범주로 사용됐는지, 그리고 피부색으로 인간을 분류한 린네의 명명법과 흰 그리스 조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던 빙켈만의 미학이 어떻게 씨줄과 날줄이 되어 백인우월주의 신화와 인종화를 만들어냈는지 찬찬히 풀어낸다(1장). 여기서 문제는 몸 담론이 인종과 결합되고 합리화하는 방식에 있다. “작은 안면각, 가벼운 뇌, 돌출된 아래턱, 앞이마 중앙의 미발달”(77쪽)이 흑인의 특징을 넘어 범죄나 백치 같은 열등한 인간의 특성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유대교를 믿던 유대인들의 종교 집단이 ‘검은 머리에 매부리코’를 지닌 ‘탐욕스러운 인간들’로 인종화되는 경우 등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흥미로운 점은 인종화에 대한 시각 경험을 배반하기도 일이 종종 발견된다는 것이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제아무리 피부가 하얗더라도 ‘흑인’이지만 그들 중에는 ‘패싱’을 통해 백인 사회에 자연스레 진입하는 경우도 있었다(94~103쪽). 또한 ‘예쁜 아리아인 선발대회’에 유대인 해시 레빈슨 태프트가 1등으로 선발됐던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216~218쪽). 유대인은 여러 지역에서 여러 민족과 함께 살아왔기에 외모만으로 식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인 몸을 근거로 인종을 구분한다는 것의 비논리성을 보여주는 증거인 동시에 태어남과 동시에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했던 몸들에 해방과 자유를 찾아주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종주의’를 떠올리면 노예, 혐오, 차별, 배제, 말살, 흑백의 이분법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레 달라붙는다. 『낙인찍힌 몸』 역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 괴물쇼에 올라야 했던 흑인 여성들, 홀로코스트 속으로 사라진 유대인, 이스라엘 국가에서 배제당한 에티오피아 유대인, 한국사회에서 부당한 처우에 놓인 이주민 등과 같이 인종주의의 슬픈 역사를 재현하는 데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렇지만 이에 못지않게 폭력에 맞서 저항하며 주체적인 목소리를 냈던 장면들을 소개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노예 해방을 애원하는 수동적인 노예가 아닌 스스로 ‘사슬을 끊는 노예’(142쪽)를, 불쌍하고 연민을 자아내는 노예 여성 트루스가 아닌 꼿꼿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나(이미지)를 판다”(198쪽)고 말하는 트루스의 모습을, ‘거래’가 아닌 열렬한 연애를 거쳐 결혼했음을 당당하게 공개한 결혼이주여성의 편지 사연(317쪽)을 실었다. 독자들은 각 장마다 저자가 숨겨 놓은 희망의 몸짓을 만나게 될 것이다. 책에 실을 70여 장의 시각자료를 선정하며 인종차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고착화시키는 이미지를 일부러 배제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중요한 점은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인종주의에 갇힌 인종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2018년 10월 14일 세상을 떠난 네팔인 ‘미누’를 추모한다. 그는 1992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해 18년을 일하며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는 데도 앞장섰으나, 표적단속으로 잡혀 결국 강제출국을 당했다. 저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미누와 그가 활동했던 다국적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을 떠올리며, 그가 “온정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단속과 추방,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도 거부했”(380쪽)다고 쓴다. 이는『낙인찍힌 몸』이 그의 말을 빌려 전하고 싶은 메시지기도 하다. 윤동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