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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낼때 기꺼이내는 분 직업은?(20)
세금낼때 기꺼이내는 분 직업은?(20)
  • 교수신문
  • 승인 2019.07.2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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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20)-납세감정

우리 국민은 어떤 심정으로 세금을 낼까?

⓵ 뜯긴다. ⓶ 나만 낸다. ⓷ 조건에 따라 더 낼 수도. ⓸ 나라 사랑.

적으면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⓵⓶⓷⓸ 모두다. 솔직하게 ⓵⓶는 세금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고, ⓷은 의료보험에 한해서 그렇고, ⓸는 교통범칙금 낼 때다.


딱지를 뗐는데도 그것이 지방세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일단 내가 잘못했고, 그 벌과금이 내 주변을 위해 쓰인다면 오케이다. 차도 없는 고속도로 같은 남해안의 신설지방도에서 과속으로 걸린 적이 있는데, 충북지방경찰청으로 범칙금 통지서가 나온 것을 보며 기분이 살짝 좋아졌던 적이 있다. 그런 데 숨어 딱지를 떼는 경찰에게 뭔가 뜯긴다니 원통했지만 그 돈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위해 쓰인다니 덜 억울했다. 지역경제를 위해서 과징금을 낸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⓷은 의료보험의 경우다. 내가 죽을 때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면(이게 조건이다), 더 내도 좋다는 것이다. 우리 보험이 미국보다 좋은 것은 분명하다. 이른바 미국의 ‘제너럴 호스피탈’이 ‘일반병원’이나 ‘시민병원’을 넘어 ‘보험 없는 자들의 구호병원’이라는 개념이라는 것을 안 것은 미국의 의료보험체계를 알고서다. 우리식으로 말해 ‘제민원’(濟民院)으로 구제(救濟)의 개념이 들어가는 것이다. ‘제민’이건 ‘제너럴’이건, 죽을 때 돈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 그럼 삶이 좀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한다. 다들 걱정이 죽을 때 재산 날리는 것이라서, 집 사고 보험 들지 않는가. 그거라도 있어야 버틴다고.


그런데 개념상으로 ⓵⓶와 ⓷⓸는 다르다. 과징금(過徵金)은 국가가 징수하지만 조세를 제외한 수수료나 벌금이란다. 게다가 ⓷은 보험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므로 세금이라 하기에도 뭐하다. 그럼 ⓵⓶이야기를 해보자.


한국납세자연맹이 회원 3032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국민은 세금을 낼 때 어떤 기분일까요?’라는 재밌는 설문조사를 했다(2019.4.). ‘흔쾌히 낸다’가 12.2%인데, ‘어쩔 수 없이 낸다’(55.6%)와 ‘빼앗기는 기분이다’(32.2%)이 100명 중 88명(87.8%)이란다. 연맹 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내는 기분도 부정적인 것으로 정리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정말 부정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돈 낼 작정하고 있었지만 남이 내주면 좋은 것이 사람이니 말이다. 게다가 납세자연맹은 납세정의를 위해 국민의 세금을 되찾아주는 시민단체다.


내가 보기에 더 재밌는 것은 ‘빼앗기는 기분이다’라고 느끼는 집단이 800만 원 이상의 고속득자에서 도드라지게 평균보다 12% 가까이 많다는 점이다. 고소득자들이 ‘어쩔 수 없이 낸다’(43.9%)거나 ‘빼앗기는 기분이다’(43.9%, 동률)라는 것은 납세정의에 대한 사회적 타협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다.


복지확대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37.7%가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는 생각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국민 75%는 정부가 증세로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고 상이하게 발표했는데, 납세자연맹회원이 세금에 더 민감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랏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만이 ‘흔쾌히 낸다’(18.3%)는 데 평균보다 6% 정도 높다.
언제나 우리나라가 조세에서 ⓵⓶가 아닌 ⓷⓸의 나라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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