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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논쟁의 역사를 통해서 본 사회학』(김덕영 지음, 한울 刊)
주간리뷰: 『논쟁의 역사를 통해서 본 사회학』(김덕영 지음, 한울 刊)
  • 최종렬 연세대
  • 승인 2003.08.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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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과 구분되는 논쟁의 힘

김덕영의 '논쟁의 역사를 통해서 본 사회학'은 독일 사회학의 발전을 논쟁사를 통

해 정리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회학사가 번역되고 소개돼 있는 현실에서, 왜 하필 논쟁사를 통해 독일 사회학의 발전을 추적하게 된 것일까. 저자는 화해와 조화를 추구하는 '화쟁'과 싸움을 통해 더 나은 과학으로 발전하는 '논쟁'을 구분하고, 한국사회가 논쟁이 아닌 화쟁이 지배함으로써 개체성이 죽고 획일성이 지배하는, 그래서 결국 과학이 죽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진단한다.

퇴계와 고봉 사이에 벌어진 논쟁과 같은 소중한 역사를 지녔던 한국 전통사회가 서구의 근대와 결합하면서, 지식의 온정주의, 파벌주의, 근친상간이 지배하는 화쟁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의 매서운 비판이다. 분화와 가치의 다신교, 그리고 항상적인 논쟁가능성에 놓여 있는 근대세계에 와서 오히려 논쟁이 사라지고 화쟁이 지배하는 아이러니가 한국사회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저자는 보편적인 인격을 지닌 교양인이라는 미분화된 지식인상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함으로써, 지식인들을 논쟁에서 면제된 화쟁의 세계에 안주하게 한다고 꼬집는다. 따라서 '직업으로서의 과학'을 수행할 분화된 지식인을 요구하는 논쟁의 문화로 전환하자고 주창한다. 결국, 독일 논쟁사는 논쟁의 문화가 얼마나 풍요로운 지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논쟁의 핵심적인 쟁점과 문제를 좀더 분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저자는 의도적으로 "A냐 B냐"의 이분법을 따라, 19세기말부터 1970년대까지의 논쟁을 1부의 '사회학 논쟁의 전초전'과 2부의 '사회학 논쟁의 역사'로 간명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논의의 폭과 질을 명료한 이분법으로 환원시킬 것이라고 미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분법은 복잡한 논쟁을 지우는 대신 세밀한 논의의 미로를 헤쳐 가는 길라잡이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단순한 이분법은 사라지고 여전히 지적인 세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그것을 풍요롭게 할 마르지 않는 논쟁의 샘들과 곳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대립과 갈등이 해소되는, 그래서 말라버리고 마는 화쟁의 샘과 달리, 논쟁의 샘은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면서도 대립하고 투쟁하기에 영원히 솟구치기 때문이다.

주례사 서평을 비판하는 저자를 볼 때, 한 가지라도 논쟁거리를 던지는 것이 예의일 듯하다. 잘 알다시피 서구사회는 전통사회에서 모던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위규범으로서의 종교의 토대가 사회적 분화과정으로 인해 상실되고, 지식적 차원에서도 과학, 도덕학, 미학이 분화돼 나온다. 그 결과 사회학을 비롯한 각 분과학문은 종교라는 상위규범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토대를 창조하고자 했다. 이런 분화과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저자는, 지나친 전문화로 인해 사회학이 공중으로부터 단절돼 소수 엘리트들만의 秘敎적인 담론 잔치로 변질된 현 서구의 상황에 대해서는 눈감는다. 묻자. 과연 한국 (사회)학계에 논쟁이 부족한 이유가 직업으로서의 과학을 추구하는 과학자들이 '너무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공중으로부터 격리된 분과학문에 갇혀 경력쌓기를 위한 글쓰기에 치중하는 과학자가 '너무 많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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