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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임경석 지음, 역사비평사 刊)
주간리뷰 :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임경석 지음, 역사비평사 刊)
  • 최규진 아세아문제연구소
  • 승인 2003.08.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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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사료, 부활하는 역사

최규진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한국사

"의장은 세계 프롤레타리아운동을 위해 희생된 투사들을 기념하고자 기립할 것을 제안했다. 모두 기립했고. 오케스트라는 행진곡을 연주했다. 넓은 대회장에 환호에 찬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1921년 5월 이르쿠츠크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창립대회 모습이다. 나는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에서 소개한 수많은 사료 가운데 이 부분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인터내셔널 노래'를 함께 부르는 식민지 혁명가들의 벅찬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일제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압을 받았으며, 남한 땅에서 끔찍한 '반역'의 상징으로 그려졌던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이 책은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이 막 일어나던 때를 다루면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 동안 초기 사회주의운동을 다룬 글이 더러 있었지만, 턱없이 모자란 사료 탓에 그 내용이 앙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반공주의적 시각'으로 덧칠한 글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이론'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한다. 그는 철저하게 "사료가 역사를 말하게 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가 역사와 마주하는 현장은 '러시아현대사문서보관연구센터'에서 잠자고 있던 알토란 같은 사료더미였다. 그는 그 사료에 숨결을 불어넣고 혼을 일깨워 입때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낱낱이 들춰냈다. 게다가 과감하게 '문학적 형상화'를 시도해 '고리타분한' 역사를 잘 짜인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낯선 단체나 사람들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어려움도 있겠다. 너무 촘촘한 나머지 조금 어수선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초기 사회주의운동사의 내막을 알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알찬 내용을 전해준다.    

이 책은 초기 사회주의운동사의 쟁점을 모두 다루고 있다. 저자는 사회주의자들이 까닭 없이 분파투쟁을 일삼았다는 흔한 평가를 마다한다. 그들의 '분파투쟁'이란 정치문제, 토지문제, 조직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며, 전략과 전술을 둘러싼 대립이었다고 한다. 보기를 든다면, 이르쿠츠크파 공산당과 상해파 공산당은 변혁론과 통일전선전술에서 서로 다르다고 했다.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은 사회주의 혁명론을 내걸면서 민족주의자를 차갑게 대했지만, 상해파 공산당은 "민족해방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혁명으로 성장·전화하는 연속혁명론"을 내걸면서  민족주의자와 손을 잡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접근 방식은 매우 정당하다. 그러나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은 남아있다. 사람에 따라 '연속혁명론'이나 '통일전선전술'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보편적 인간해방의 갈망은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빌려서 표현되지 않는 듯하다"는 그의 말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아직도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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