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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17)-환과고독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17)-환과고독
  • 교수신문
  • 승인 2019.07.0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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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데 엄마 없음’… 이게 해결돼야 아기를 낳는다. (母而無母)
충북대 정세근 교수
충북대 정세근 교수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굴까? 다들 나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잠시 참고, 개인화하지 말고 집단으로 말해보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불쌍할까?

여자는 여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남자는 남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좀 더 나가보자. 여자는 젊은 며느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할까, 늙은 시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할까? 당연히 권력이 있는 ‘젊지 않은’ 며느리나 ‘늙지 않은’ 시어머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도 군대 간 남자나 퇴직 후 눈칫밥 먹는 남자만 생각하자.

우리 시절 한문시간에는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고 쓰고 외워야 했다. 내용은 이렇다. 환은 아내 없는 홀아비, 과는 남편 없는 과부, 고는 부모 없는 아이, 독은 자식 없는 부모라 했다. 당시 내 아둔한 머리로는 ‘환’과 ‘과’는 이해가 됐는데, ‘고’가 왜 부모 없는 아이이고 ‘독’이 왜 자식 없는 부모를 가리키는 말인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나 독이나 모두 ‘고독’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와 독이 어떻게 나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는 본디 ‘고아’(孤兒)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나중에서야 오히려 ‘외롭다’는 뜻이 넓혀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고 자 옆에 아이들을 가리키는 자(子) 자가 그것이었다.

사실 ‘환과’도 이상한 표현이었다. 상대성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과’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모자란, 채워지지 않은 상태를 과로 본다면 그것은 여성에게만 씌울 단어가 아니었다. 홀어미나 홀아비나 모두 과였다. 남자 과부도 과부(寡夫), 여자 과부도 과부(寡婦)면 될 듯했다. 환(鰥)이라는 글자에 물고기 어 자가 붙고 그것을 남성 홀아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 것은 내 수준에서는 요령부득이었다.

‘환과고독’이라는 표현은 『맹자』에 나온다. 정확히는 ‘환과독고’다. “늙어 아내가 없음을 환이라 하고, 늙어 지아비가 없음을 과라 하고, 늙어 자식이 없음을 독이라 하고, 어려서 아비가 없음을 고라 한다(老而無妻曰鰥,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 幼而無父曰孤). 이 넷은 사회(천하)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말할 데가 없다.” 맹자 식으로는 엄마만 있어도 고(아)다. 그래서 그런지 고보다는 독을 우선시 했다. 철저히 나이든 사람 우선, 남성 우선의 사고다. 오늘날의 표현에서는 ‘독고’가 ‘고독’으로 바뀌어 통용된다.

맹자에 따르면 주 문왕이 인정을 베풀면서 반드시 이 넷을 먼저 생각했다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또 다른 집단이 있다.

군대 간 아들을 둔 어머니도 낄 수 있겠다. 그러나 요즘 같은 평화 시에, 그리고 군 인권도 강조되는 때에, 그 어머니가 가장 안 됐다고 보기 어렵다.

직장에서 잘린 아버지도 떠오르지만 청년들도 취업이 안 되는 현실에서, 비교하자면 덜 안 됐다. 잘릴 때 잘리더라도 취업이라도 해보자는 것이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외침이다.

이혼 후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아진 현실에서 오리지널 싱글이건, 돌아온 싱글이건 반드시 불쌍한 것은 아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궁상맞아 동정표를 더 얻을 수는 있지만 남자여자로 나누기는 뭐하다.

내가 오랫동안 보아온 것으로는 ‘엄마 없는 아기 엄마’가 불쌍했다. 아기를 날 때 도와줄 엄마가 없는 아기 엄마를 가리킨다. 엄마가 아기를 나보았기에 아기가 엄마가 돼서 아기를 낳는 고통과 심정을 가장 잘 알 것인데, 그 아기 엄마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내 눈에 참으로 슬퍼보였다. 맹자 식으로 말하면 ‘엄마인데 엄마 없음’(母而無母)이라고나 할까. 이게 해결되어야 아기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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