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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동향_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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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택광 영국통신원
  • 승인 2003.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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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적으로 승부하는 영국의 출판계

영국의 학술출판 시장에서 최근 두드러진 경향은 아무래도 수익성이 높은 교과서 출판이라고 하겠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지만, 대처 정부 이래로 지속돼온 공공도서관과 학술시장의 축소는 이런 학술출판사들의 교과서 출판경향을 일종의 궁여지책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학술출판이 방향을 잡는 길은 크게 두 가지 정도다. 대중적 글쓰기와 논쟁적 주제선정으로 학계와 일반독자의 경계를 허무는 것과 대학교과서 출판을 통해 안정적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좌파 출판사인 버소가 주로 전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반면, 학술출판의 대명사로 자리 매김을 한 루트리지와 폴리티, 그리고 세이지 출판사 같은 곳은 주로 후자의 방향을 택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딱 부러지게 구분되는 건 아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영국의 학술출판들이 대부분 전쟁과 미국의 패권주의, 또는 제국화에 집중돼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버소출판사에서 곧 출판할 타리크 알리의 '바빌론의 부시: 이라크를 다시 생각한다'나, 챌머스 존슨의 '제국의 슬픔: 미국인들 길을 잃다'와 같은 책뿐만 아니라, 폴리티출판사에서 최근 출간된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반자본주의 선언', 데이비드 헬드와 마티아스 쾨닉-아키부기가 편집한 '전지구화 길들이기' 같은 책들이 이런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버소는 이런 시대의 변화에 가장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데, 최근 출간한 엘런 메이크신즈 우드의 '자본의 제국'은 미국을 역사 속에 등장했던 여러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비교 분석해 보임으로써 에릭 홉스봄의 극찬을 받았다. 한편, 폴리티 출판사는 최근 위르겐 하버마스의 '인간본성의 미래'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흐르는 사랑'이라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작금에 변화하고 있는 현실과 인간 본성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영국의 출판동향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이런 학계와 일반독자를 이어주는 중간적 작가들의 층이 상당히 두텁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영국의 팝문화에 대한 대중적 학술서라고 할 수 있는 폴 몰리의 '말과 음악'은 문화연구의 성과를 대중적 글쓰기로 잘 풀어냈다는 호평을 듣고 있는 대표적 책이다.

이택광 영국통신원 / 셰필드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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