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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참여자본주의』(개빈 켈리 외 지음/장현준 옮김, 미래M&B 刊)
논쟁서평 : 『참여자본주의』(개빈 켈리 외 지음/장현준 옮김, 미래M&B 刊)
  • 김균 고려대
  • 승인 2003.08.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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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자 경영참여 인정...아직은 '머릿속 개념'

김균 / 고려대·경제학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영국노동당은 1997년 5월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18년 보수당 장기집권의 종지부를 찍는다. '참여자본주의'는 총선 승리가 충분히 예상되던 시점인 1996년 3월 셰필드대에서 열린 학술회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막다른 골목인가 아니면 최상의 희망인가"의 발표 논문들을 수정 보완해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학술회의는 전년도인 1995년에 출간된 윌 허튼(Will Hutton)의 논쟁적인 책 '우리가 처한 영국의 곤경(The State We're In)'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려는 목적으로 열린 것이었는데, 경제평론가이자 언론인인 허튼은 그의 책에서 영국의 장기침체는 단기주의적 금융산업의 융성과 그로 인한 제조업의 쇠퇴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케인즈주의의 부활과 유럽대륙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도입을 대안으로 주장한다. '참여자본주의'의 필자들은 이러한 허튼의 주장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또 수정한다. 그리하여 허튼의 주장 중 허술한 부분은 메우고 정교화해 그나마 체계화의 옷을 입히지만, 그 결과가 그리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대처주의를 여러 가지로 변형한 것 아닌가

허튼이 이 학술회의의 직접적 계기였지만, 암묵적으로 회의 참석자들은 동시에 허튼의 관점과 주장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론'으로 체계화해 차기 노동당정부의 노선으로 발전시켜보자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사실 총선승리를 전후해서, 노동당 안팎의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는 차기 노동당정부의 노선을 둘러싼 활발한 논쟁이 벌어진다. 대처의 신자유주의는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또 이미 오래 전에 기각된 전통적 사회민주주의노선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시대상황에서 블레어의 신노동당(New Labor)이 어떤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좌파적 이념을 실현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논쟁은 대체로 기든스의 '제3의 길' 노선으로 귀결되지만, '참여자본주의'도 그러한 토론과정의 한 산물이었다(원제목의 직역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이나 옮긴이는 '이해관계자의 적극적 참여'라는 참여민주주의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 참여자본주의로 의역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주주자본주의(stockholder capitalism)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후자에 따르면 기업은 주주가치의 증대를 위해 존재하며 규제가 없는 자유시장 경쟁이어야만 경제전체의 효율성이 보장된다. 미국과 대처의 영국이 주주자본주의 경제의 대표적 예다. 반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따르면, 기업이라는 조직은 주주, 종업원, 납품업자, 지역사회 등 기업에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단기적 주주이익의 추구가 아니라 기업의 구성원인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이 개념을 사회전체의 운영원리로 확장하면, 경제운영은 시장방임이 아니라 적절한 통제와 규제가 필수적이고, 사회적 맴버십 또는 시민권을 보장하는 복지사회의 이상도 유지돼야 한다. 유럽대륙 국가들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아직 개념적·이론적으로만 존재하지 기왕의 현실세계에서 실현된 자본주의 유형은 아니다.

예컨대 블레어 정부는 우리가 알다시피 기든스의 '제3의 길' 노선을 택한다. 이 제3의 길 노선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크게 보아 비슷하다. 또 집권초기의 블레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신노동당 프로젝트의 핵심개념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블레어에 의해서 실제 정책으로 현실화된 제3의 길은 대처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이러저러한 변용에 불과했다. 결국 제3의 길이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대처주의의 계승을 위장하는 수사였을 뿐이었다. 블레어의 예는 1990년대의 영국처럼 우경화해 일단 시장주의화 된 사회에서는, 더더구나 세계화의 조건하에서는 시장에 거역해 좌파적 구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유럽 사회경제모델의 한 유형으로 검토 가능

한국은 어떨까. 우리 사회는 1997년 IMF 위기 이후 아주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로 변모했다. 그에 따라 실업, 비정규직 노동, 불안정 고용, 분배구조의 악화, 경기변동 주기의 단축 등과 같은 지나친 시장주의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한 정책대응으로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도모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시장주의의 폐해는 극복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시장자체에 대한 개입과 통제가 불가피한 것이다. 최근에 유럽의 사회경제모델이 거론되고 있는 사정에 비춰 볼 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을 검토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델은 아직 머릿속의 개념이지 현실 속의 제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직접적 도입의 대상이 아니라 제도적 상상력의 한 출발점 정도로 읽어 나가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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