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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새 책_『공산주의의 지평』(조디 딘 지음, 염인수 옮김, 현실문화연구, 300쪽, 2019.06)
화제의 새 책_『공산주의의 지평』(조디 딘 지음, 염인수 옮김, 현실문화연구, 300쪽, 2019.06)
  • 교수신문
  • 승인 2019.06.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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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멜랑콜리' 뛰어넘는 '공상주의적 욕망'조명
공산주의는 여전히 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수반하는 불평등, 불안정, 자민족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의 이름이다

 

자유주의, 파시즘, 공산주의. 20세기를 지배한 세 이데올로기. 이들 중 자유주의가 파시즘에 이어 공산주의를 상대로도 승리했다는 ‘역사의 종언’인 선언된 지 올해로 30년째다. 그러나 역사의 끝은 연기된 듯 보인다.

유발 하라리의 진단처럼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이래 전 세계 사람들은 자유주의 이야기에 점점 환멸을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유주의는 성공할수록 실패한다”라는 자유주의에 대한 적색경보(패트릭 J. 드닌,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도 울리고 있고, “다른 사회를 꿈꿀 상상력마저 잠식한 자본주의 역시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실패한 체계”(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이고, “‘공유경제’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플랫폼 자본주의의 기만과 글로벌 자본주의의 부패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가이 스탠딩, 『불로소득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적색경보도 연이어 울리고 있다.

이와 짝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지각은 공산주의를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적인 전유를 거부하는 모든 순간과 집단적 재전유의 모든 실행 가운데 ‘이미 여기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브루노 보스틸스, 『공산주의의 현실성』)이라는 신호가 들린다. 과거의 ‘소음’이 아닌 현재적 대안의 ‘신호’로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적색경보(Red Alert)”다. 『공산주의의 지평』의 저자 조디 딘은 공산주의를 “현존하는, 점점 강력해지는 위력”으로 다룬다.

“공산주의는 여전히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수반하는 극단적 불평등, 불안정, 그리고 인종주의적, 국가주의적 자민족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의 이름이다.” 딘에게 무엇이 공산주의[적]인가? “무엇이 공산주의적인가? 국가보건의료. 환경주의. 페미니즘. 공교육. 단체교섭. 누진과세. 유급휴가. 총기 규제. 월스트리트 점유가 그렇다. 자전거는 공산주의에 이르는 ‘습관형성약물’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일깨워낸 ‘개인의 자기실현이라는 매력적인 전망’을 드러내므로 웹 2.0은 공산주의적이다.” “누가 공산주의적인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미국의 군사침략에 항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

부시 행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 부자에게 과세하고, 법인세 체계의 틈을 메꾸고, 파생상품 시장을 규제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 실업보험, 식품구입권, 공교육, 공공분야 노동자들의 단체교섭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 딘은 “정치적 대안으로서 공산주의를 활기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동적 그물망을 갈라 찢을 수 있는 집합적 욕망을 증폭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의 지평』의 마지막 문장을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에 빗대어― 다음처럼 고쳐 써도 무방하겠다. “만국의 나머지 우리여, 공산주의를 욕망하라!” 조디 딘은 『공산주의의 지평』에서 공산주의적 이상을 소비에트연방 실패의 족쇄로부터 풀어놓는다. 정보기술 네트워크로 엮인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바로 우리 자신의 소통하는 능력이 착취당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공통적·집합적 욕망들에 기초해서 조직한다면 혁명은 여전히 가능하다.

딘은 2011년의 “월스트리트를 점유하라(Occupy Wall Street)” 경험을 검토하면서, 당시와 같은 자발성이 혁명으로 발전되지는 않으며 자발성은 저 자신을 “정당”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독자들은 ‘월스트리트를 점유하라’의 자리에 ‘촛불의 물결’을 대비해 사유해볼 수 있음직하다. 『공산주의의 지평』의 전언은 집합적 주권의 담지자인 “나머지 우리로서 인민”이 “소통 자본주의” 속의 “민주주의적 충동”을 되풀이함으로써 겪는 “좌파 멜랑콜리”를 뛰어넘어 “공산주의적 욕망”을 다시금 집합적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윤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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