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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새 책_『묵상: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승효상 지음, 돌베게, 520쪽, 2019.06)
화제의 새 책_『묵상: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승효상 지음, 돌베게, 520쪽, 2019.06)
  • 교수신문
  • 승인 2019.06.1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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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건축에 관한 고민과 묵상의 시간이 반영
이 책은 결국 수도원 건축에 관한 사유로 승효상 건축의 근간을 이루는 건축 철학을 담아낸다.

 

왜 수도원인가. 이 질문에 대답을 얻으려면 그의 유년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부산 피난민촌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만들다시피 한 구덕 교회의 마당을 놀이터 삼고 교회 골방을 공부방 삼아 성장한 건축가. 찬송과 기도 소리를 몸 안팎에 새기며 신과 신앙에 관해 끝없이 질문하고 방황하다 신학자가 되고자 결심했으나, 피난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갑작스레 건축의 길로 들어서야 했던 건축가. ‘빈자의 미학’과 ‘지문’이라는 건축 철학을 스스로 세우고 ‘이로재’라는 건축 설계 사무실을 이끌며, 땅이 간직한 뭇 삶과 사람의 기억을 건축물에 담아내고자 하는 건축가 승효상. 서울시 총괄 건축가를 지냈고 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라 불리지만 승효상이 세운 건축과 건축 철학의 배경에 종교적 사유가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묵상』은 수도원 순례 여정을 배경으로 건축가 승효상이 젊은 시절부터 천착한 ‘영성’이라는 주제와 건축의 관계를 말하는 책으로, 저자가 최초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한 호흡으로 써낸 책이다. 글에는 영성과 건축에 관한 승효상의 깊은 고민과 고투, 기나긴 묵상의 시간이 반영되어 있다.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과 ‘지문’地文,landscript이라는 건축 철학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다. 그 사유와 건축의 바탕에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에 맞서는 ‘영성’에 관한 깊은 고민이 있다. 그래서 그는 틈이 나면 수도원과 묘역을 찾는다. 세상을 등진 이들의 공간에서 삶의 근본을 확인하고자 하며, 그 지방 고유의 집을 축약한 무덤과 가장 기초적 형식을 갖춘 수도원 건축에서 건축의 본질을 찾으려 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스무 살에 갈루초 수도원을 방문하고, 이 건축이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결정지었다고 했다. 평생 건축과 도시를 설계할 때마다 갈루초 수도원을 떠올렸다. 모더니즘의 완성자라 불렸고 기계미학에 심취하여 직각만이 유일하고 불변한다고 한 르 코르뷔지에가 롱샹 성당에서 모든 이성을 버리고 태초의 감성으로 돌아간 듯 자연의 곡선과 장엄한 빛으로 가득한 건축을 지은 까닭도 어쩌면 젊은 시절 마주한 수도원 건축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이후 르 코르뷔지에는 르 토로네 수도원을 참조하여 라 투레트 수도원을 지어달라는 쿠튀리에 신부의 요청에도 순순히 응한다. 이미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때였고 롱샹 성당을 짓던 중이었으나, 순종하여 르 토로네를 찾는다. 그리고 큰 감동을 받아 르 토로네 수도원을 ‘진실의 건축’이라 칭하며 여기에 담긴 영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라 투레트 수도원에 옮겨 심는다. 르 토로네를 닮았다는 일부 수도사들의 비아냥거림과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승효상은 라 투레트 수도원을 처음 방문한 1991년 여름, 태고의 빛과 암흑을 담은 듯한 경건한 건축에 충격을 받는다. 르 코르뷔지에가 갈루초 수도원과 르 토로네 수도원을 보고 그러했듯이, 지난 지식과 관습을 버리고 비웠다. 오로지 절박함으로 영성을 담은 건축을 짓고자 했다. 그리고 이는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적 사유는 물론이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하양 교회’, ‘명례성지’, ‘사유원’ 등 최근 ‘영성의 지도’라 명명하여 구축하고 있는 건축 활동으로도 이어진다. 이 책은 결국 수도원 건축에 관한 사유로 승효상 건축의 근간을 이루는 건축 철학을 담아낸다. 자본주의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진부하고 습관적인 사유와 행위로 가득한 사회에 영성을 지닌 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종교적 의미로서의 영성뿐 아니라 천박하고 상업적인 건축과 사회에 지친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요와 묵상, 영성의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이러한 건축을 탐색하고 그 정신을 담아 미래를 살아갈 이들을 위한 공간을 새로이 지어,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는 영성을 되찾고자 한다. 『묵상』을 읽은 독자는 승효상이 완성할 ‘영성의 지도’를 더욱 기대하게 될 것이다. 양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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