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6-19 13:55 (수)
군주제 아래 더욱 빛난 혁신의 아이콘
군주제 아래 더욱 빛난 혁신의 아이콘
  • 교수신문
  • 승인 2019.06.10 1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산에게 배운다'(박석무 지음, 창비, 404쪽, 2019.06)

 

이 책은 흔히 다산 정약용을 조선 후기의 박식하고 명석한 ‘르네상스인’정도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학문적·정치적으로 변혁을 꿈꾼 사상가임을 특별히 강조한다. 정약용은 튼튼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유학이 실천의 근거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조선의 이념을 지배해왔던 관념적인 성리학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정치가 군주나 목민관의 말이 아니라 민의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한다는, 군주제 국가의 지식인으로서는 매우 앞서나간 생각을 보여줬다. 다산의 이러한 혁신적인 사고는 유학 경전과 동양 정치철학에 대한 독창적인 이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는 논어를 읽되 기존의 방식으로 읽기를 거부하였고, 맹자를 읽되 그 안에서 새로운 신성철학을 끄집어냈다. 저자는 “공자의 기본사상인 『논어』를 재해석하여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40권을 지어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뜻을 새롭게 해석하여 중세의 관념적인 성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분쇄했다. 『맹자』를 재해석해 『맹자요의(孟子要義)』 9권을 지어 성(性), 심(心), 본성(本性), 기질(氣質) 등의 주자 해석을 통박하고 새로운 인성(人性)철학을 수립하였다. (…) 이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혁명적인 노력이었다.”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아는 다산의 대표적 저작인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 이른바 ‘일표이서’는 정치적 실천 방안을 논한 경세학(經世學)이다. 사실 다산 전집인 『여유당전서』에서 경세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고 양으로 보면 절반 가까이가 유학 경전에 대한 해석이지만, 다산 사상 전체에서 경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무겁다고 할 수 있다. 이 빛나는 저술들이 있기에 다산은 단지 명석한 관료나 선비에 그치지 않고 위대한 유학자이자 혁명적인 사상가로 불릴 수 있다고 저자 박석무는 주장한다.
그런 다산 경세학의 핵심은 민(民)에 대한 생각들이다. 다산학의 대가 위당 정인보는 다산의 경학이 ‘민중적 경학’이라고 평가했는데, 실제로 「원목」「탕론」 등 뛰어난 경세학 논문들에서 다산은 통치자는 백성을 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존재이유가 있고(목위민유, 牧爲民有),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군주는 백성의 힘으로 추방할 수 있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펼친다.
다산의 삶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이 단지 이론이나 당위의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산이 목민관으로서 있을 때 관아에 항의하러 온 시위대의 주동자를 무죄 판결한 사례나, 유배살이를 하는 동안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이 압제받는 현장을 보고 지은 ‘참여시’ 혹은 ‘사회시’의 내용은 그가 민중을 진정으로 사랑한 민중이 가진 힘을 굳게 신뢰한 지식인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이루기 전 다산의 사상은 재민주권의 회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등불과도 같았다. 다산을 배우며 우리의 주체적인 사상에서 근대적 생각을 만났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의 근거를 다산에서 발견했다. 민주화가 진전된 이후에도 다산은 탁월한 통찰과 인격으로 대표적인 조선의 지식인으로 숭상받아왔다. 다산의 시대를 멀리 지나와 이제 시민은 나라의 주인이 되었고 통치자는 시민에 의해 선출되고 퇴출되기도 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공익에 봉사하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