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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이 깨닫게해준 세상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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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19.06.0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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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13)]-다리를 다치고 나니

 

다리를 다치고 나니 별개 다 보인다. 그래서 장애체험행사를 하는가보다. 남을 이해하는 폭이 잠시라도 넓어져서 통증의 대가로 여겨진다. 다리 아픈 것이 화라면, 덕분에 눈을 넓히게 되는 복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테니스를 치다가 종아리에 공을 얻어맞은 줄 알았다. 뻑 소리와 함께 종아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옆으로 네트에 짧게 떨어진 공을 좇아가다 생긴 일이다. 공이 들어왔다고 외쳤는데도 다들 별 반응 없었다.
전국교수테니스대회에서 벌어진 사고다. 이 모임은 전국의 교수가 가장 많이 모이는 잔치가 아닐까 싶다. 선수만 84개 대학 1500여명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유치경쟁도 한다. 지역에서 2박3일 동안 쓰고 가는 돈이 꽤 되고, 학교 선전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은 부산의 국립대, 후년은 강릉의 사립대에서 한단다.
아프기는 야구공에 맞은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종아리근육파열이었다. 혹여나 풀릴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견문 넓으신 테니스장 사장님 겸 대회운영위원의 권유에 따라, 바로 그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는 한방병원장님에게 응급조치를 받기로 했다. 그분의 이야기는 일단 피를 빼야 한다는 것이고, 별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렇고, 그날 이후 목발신세를 지고 있는데 불편한 게 하나둘이 아니다. 나열해본다.
1) 걸음이 엄청 늦어졌다. 앞을 막지 않고 한쪽으로 비켜있는데도 사람들이 툭툭 치면서 앞서가는 것이 느껴진다. 5분이면 갈 거리를 땀을 찔찔 흘리면서 20여분 동안 가고 있다. 노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2) 장애인주차구역은 이렇게 잠시 다친 사람을 못 쓴단다.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까지의 거리가 참으로 멀게 느껴진다. 장애자 주차구역에서 정말로 장애자가 내리는 장면은 몇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손으로 운전하는 모 철학교수와 뇌성마비 여학생), 정말로 필요하다. 응급환자 없는 앰뷸런스처럼 엉터리들을 솎아내는 것도 시급하겠지만, 그래도 우선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3) 평소 같으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주지 않겠지만 쩔뚝이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주더라. 마음속에 ‘공정경쟁’이라는 관념을 다들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멀쩡한 놈은 놓고 가더라도, 쩔뚝이는 기다려주는 대한국민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옳다는 생각을 지닌 우리다. 
4) 바퀴의 위대함을 느낀다. 차가 없었으면 어떻게 출퇴근을 했을까도 걱정스럽지만, 복도에서는 바퀴달린 것을 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럼 금방인데, 발을 질질 끌며 한참을 가고 있는 내 꼬락서니다. 3천 년 전에 발명된 바퀴,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바퀴 없이는 땅으로 못 내리는 것처럼 두 발로 걷는 영장류도 바퀴 없이는 운송혁명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역사)가 아니라 ‘바퀴를 보면 그저 타고 싶다’(육신).
5) 한 발이 아프니 다른 발이 아프고, 다른 발이 아프니 허리가 아프고, 오른 발 대신 오른 손이 아파온다. 체중을 싣는 인체의 조화를 깬 죄다. 한의사는 다치지 않은 새끼발까락에 악 소리가 나게 침을 찌르더니 그 까닭을 알겠다. 인체는 연결되어있었다.
6) 기차(KTX)도 비행기처럼 휠체어 서비스가 있더라. 이용은 못했지만, 확인은 했다. 서울역에서 휠체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역무원에게 물어보았더니 타면서 신청하면 된단다.
나의 아픔은 상대방의 기쁨이 되고 말았어도 작은 위안이 있다. 공은 넘겼고, 포인트는 땄다는 것. 후과는 잔혹하지만.

정세근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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