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9일은 일제 강점기 일본 동북지역 하나오카광산이 허물어져 한인 징용자 11명과 일본인 노동자 11명이 생매장당한 나나쓰다테(갱도 붕괴) 사건 75주년이었다. 나나쓰다테사건에 대해 한일 희생자의 가족이 항의하고, 나나쓰다테 사건 전후 한인 징용자들이 배급 부족 등 회사 측의 부당함에 맞서 조선인들이 투쟁한 근거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정훈 전남과학대학 교수는 일본 작가 마쓰다 도키코가 쓴 르포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과 사건을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쓴 시, 그리고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에 전시됐던 판화 ‘하나오카 이야기’ 중 2편이 모두 당시 조선인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김 교수는 하정웅미술관에서 지난 2월28일 열린 ‘강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연행과 진상규명-일본 다자와호수 주변과 하나오카광산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를 전시연계 세미나에서 발제한 후 ‘하나오카 이야기’ 전시회와 관련자료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다.
나나쓰다테 사건 여파로 붕괴된 하나오카강 수로변경 작업을 위해 다수의 중국인 포로가 투입됐다. 이들은 1년여 년 동안 전범기업 가시마구미(가시마건설)의 기아와 린치, 학대에 못 이겨 1945년 6월30일 봉기했다. 하지만 전원 붙잡혀 대량학살당하는 하나오카 사건이 일어났다. 1년여 동안 희생자는 밝혀진 것만 418명. 나나쓰다테 사건이 하나오카 사건의 단초인 셈이다.
‘하나오카 이야기’는 하나오카 사건을 직접 체험했거나 목격한 현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판화작가와 시인이 목판화와 서사시로 표현한 목판화집이다. 작가는 이러한 비극이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목판화집을 만들었다. 일본에서 1951년 출간됐고, 1981년 일본 무묘샤(無明舎)에서 다시 출간됐다. 김 교수는 “판화작가 니이 히로하루(新居広治) 등이 새긴 판화 하나하나에 시인 기타 세츠지(喜田設治)가 쓴 시가 딸려 있어 사건 내막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기타 세츠지는 첫 번째 판화 ‘나나쓰다테의 낙반’을 시로 표현하며 ‘나나쓰다테가 무너지네!/ “아버지를 살려내라!”/ 회사 놈들은 뭘 했는가/ 위령제 때 돈 몇 푼 부조했을 뿐/ 산 채로 매장된 22명의 유골은/ 지금도 그대로 44년 5월의 일일세’라고 썼다. 1944년 일본전범 기업(도와홀딩스=동화광업)이 일본인 노동자와 조선 징용자에게 중심 기둥도 세우지 않고 난굴을 명령했고, 하나오카강 밑을 파다 발생한 나나쓰다테 사건을 배경으로 노래한 것이다. 유골 수습도 안 된 사실까지 지적했다.
또 기타 세츠지는 ‘투쟁하는 조선인들’을 통해 ‘조선의 노동자들-농부들도 징용되어 왔지/ 그 한반도 사람들/ 마침내 참지 못하고/ 우루루 사무실로 몰려와/ “임금을 올려라!”/ “배급을 똑바로 해라!”/ 우리들은 마음 속으로 손뼉쳤지/ 조선인들이지만 용기가 대단해!’라고 썼다. 회사 측에 투쟁한 조선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시에 주목했다. 이 시가 ‘나나쓰다테 낙반’이라는 작품 뒤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동료들이 생매장된 일에 대한 조선인들의 울분이 반영됐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김 교수는 마쓰다 도키코의 현장취재 보고서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에도 ‘물을 많이 넣으니 저울에 단 밥은 무거워졌으며 그 만큼 쌀의 양이 줄어 “물을 많이 넣지 말라”고 항의했다. 또 배급주를 속여 다른 곳에서 진탕 마시고 소란 떠는 일본인 경계들을 모두 적발한 적도 있었다’고 적혀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조선인들이 나나쓰다테 사건 전후 투쟁한 장면이 시와 판화, 그리고 작가 보고서에 모두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 ‘땅밑의 사람들’에도 회사측이 조선인을 부당하게 대우한 사실과 이에 항의하며 일본인 경계들에 맞서는 내용이 나온다”며 “판화와 시, 그리고 작가가 쓴 르포와 작품이 모두 일관되게 기술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기타 세츠지의 시구 중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손뼉쳤지’라는 부분을 거론하며 “나나쓰다테 갱도가 허물어졌을 때 한인 징용자와 일본인 노동자가 연대해 한인 징용자 1명을 구출했다”며 “시에서도 조선인들과 연대하는 일본인 노동자들의 심경이 그려지고 있다”고 근거를 더했다.
한편 일본 현지에서는 2009년 이후 5년마다 한일공동으로 나나쓰다테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식이 열린다. 올해가 3번째 추모식이다.
허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