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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 계약제 이후 교수사회의 명암 <마지막> : 날치기 통과된 계약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라
심층기획 - 계약제 이후 교수사회의 명암 <마지막> : 날치기 통과된 계약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라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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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에 위임된 교수신분 법률로 정해야...입법개선 公論 필요

 

"교육위원회에서도 날치기를 합니까?" "합의를 해놓고 왜들 그러시는가." "누가 합의를 했어요? 심의도 안하고 통과시키는 그런 것이 어디 있어요?" 지난 1998년 12월 30일, 국회 교육위원회 199회 제2차 회의에서 교수계약임용제 도입, 교원정년단축 등의 내용을 담은 '교육공무원법중개정법률안'이 통과됐을 당시 교육위원들간에 오갔던 대화다.
당시 회의록을 뒤져보면, 교육위원들의 토론내용은 대부분 교원의 정년을 단축하느냐, 마느냐에 치우쳐져, 교수계약임용제 도입이 왜 필요하며, 과거 기간임용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교수계약제를 도입하는 취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뿐이다.
'교원정년단축'이라는 사안에 밀려,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다가 '교원정년단축'과 함께 덩달아 날치기 통과돼버리고 만 것이 교수계약임용제였던 셈이다. 2∼3시간 사이에 이뤄진 회의의 결과가 향후 교수사회에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에 대한 고민은 그속에서 찾을 수 없었다.
단기 계약임용, 불공정 계약임용 등 교수계약임용제가 시행 초기부터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처럼 충분한 심의과정 없이 성급하게 도입됐던 것과 무관치 않다.
교수신문이 여덟 번에 걸쳐 '계약제 이후 교수사회의 명암' 기획시리즈에서 담고자 한 것도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계약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는지 등을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계약제가 도입되기 전, 교수단체들을 비롯해 교육법학자에 이르기까지 계약제가 시행될 때의 문제점, 위헌 소지, 악용 가능성 등은 누누이 제기돼 왔다.
계약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적 풍토, 좁은 교수임용 관문, 대학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경직된 교수시장, 인사권을 쥐고 있는 학교법인과 교수들간의 수직적인 의사결정구조, '객관적'인 이유 없이 재임용에 탈락돼도 구제받을 수 없는 법질서 등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 막고, 귀 닫지 않은 이상, 재단 이사장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데다 대학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는 등 계약제의 기본적인 토대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한 평가와 협상·계약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교육부가 주장처럼 계약제 도입이 우수교원을 확보하고, 교수들의 연구능력을 향상시켰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더욱 드물다.
교육부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사례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연봉 1천2백만원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하던지, 아니면 학교를 그만두라는 내용의 계약서가 부끄럼 없이 나돌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것이 '재계약의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사립학교법에서 교원이 형사처벌을 받거나 폐과·과원이 아닐 경우에는 직권면직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도,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신임교수들은 "학내 규정을 위반하면 대학의 장이 계약기간 중이라도 직권면직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다.
한편, 계약제가 보여주고 있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문제라면, 또 다르게 계약제의 '위헌성' 여부도 문제시되고 있다. 이는 "교수의 지위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계약'에 맡길 수 있는가"라는 의문과 맞닿아 있다. 헌법은 교원의 지위를 법률로 정하라고 규정해놓고 있지만, 계약제는 임용기간, 급여, 근무조건, 업적 및 성과, 재계약의 조건과 절차 등을 '계약'으로 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교원지위법정주의와 계약이 서로 상치하고 있는 것.
구 사립학교법에 규정된 '교수기간임용제'가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이후, '계약제'의 위헌성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김문현 이화여대 교무처장이 지난 9일 열린 전국교무처장협의회(회장 고인수 울산대 교수)에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교원을 별다른 하자가 없는 한 다시 임용하여야 하는지의 여부, 재계약대상으로부터 배제하는 기준이나 요건 및 그 사유의 사전통지 절차의 문제, 재계약거부에 대한 구제에 관한 절차의 문제가 계약임용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지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직접적으로 '계약제'를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기간임용제의 문제점들이 계약제에 사라지지 않는 한 계약제에 위헌소지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계약제는 기간제로 임용된 교수들과 달리 △대학교원의 재임용 신청권 부여 △객관적사유에 근거한 교원인사위원회의 재심여부 심의 △소명권 부여 △근무기간 종료전 재임용 여부 통보 △재임용거부 사유 설명서 교부 등 '재계약의 조건과 절차'를 법률로 따로 정하지 않고 '계약'에 전적으로 위임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기간제 임용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과 계약제와의 연관성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헌법재판소의 취지를 살리자면 계약임용제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반응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계약제를 검토해야 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지적이라고 보지 않는다"라며 최근 계약제에 제기되고 있는 위헌성 문제에 난처함을 나타냈다. 헌법재판소 판결의 취지를 살린다기보다는 이해당사자간의 주장들을 큰 반발없이 조정하는데에 관심이 더 컸다. 이 관계자는 "재임용·재계약에서 거부된 교수들을 위한 사전·사후 구제절차를 마련하고자 입법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구제절차를 법률로 규정할 경우 사학의 자율성과 교수시장의 유연성을 해칠 가능성이 많아, 이해당사자간의 의견대립을 최소화한 최적의 지점을 찾고 있다"라며 입법개선에 소극적인 교육부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재임용제에 대해 한 해직교수는 "교육부가 잘못 제안하고, 국회가 법을 잘못 만들고, 사법부가 잘못 판단해서 만들어진 합작품"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올 하반기 교육부가 국회에 상정할 입법개선안도 사전논의가 불충분할 경우, 부지불식간에 재임용제와 동일한 길을 걸을 가능성도 많다. 교육부가 땜질식으로 기존의 교수임용방식을 부분 수정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한다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 또 다른 30년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부가 교수·대학사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들을 거쳐 교수들이 학문의 자주성과 전문성·중립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입법개선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교수·대학사회가 적극적으로 바람직한 입법개선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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