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0-21 11:02 (월)
[강사제도 개선 시리즈-3] 그릇된 관행도 사라지지 않으면 '대학 치욕' 올 수도
[강사제도 개선 시리즈-3] 그릇된 관행도 사라지지 않으면 '대학 치욕' 올 수도
  • 교수신문
  • 승인 2019.05.20 1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사는 교원이다-교원으로서의 강사의 탄생
지난 2월 한교조 구성원들이 세종 교육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 2월 한교조 구성원들이 세종 교육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학의 시간강사 제도는 수십 년 유지되어 왔고, 이제 고등교육법이 개정되었다. 시간강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강사가 생겨난다. 그리고 강사는 시간강사와 달리 법적인 교원의 지위를 갖는다. 시간강사를 대하던 과거의 관행은 쓸모가 없어졌다. 대학은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 가야 한다.
  먼저 이름. ‘시간강사’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강사’라는 이름이 사용된다. 강사는 교수, 부교수, 조교수와 함께 고등교육법상의 교원이다. 대한민국은 헌법 31조에서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교원법정주의’라고 하는데, 이에 따라 강사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대우, 근무조건, 신분보장, 보수 등이 법률로 정해진다. 이 법률이 고등교육법이고, 여기에 있는 강사와 관련한 조항을 세칭 ‘강사법’이라고 한다.
  시간강사들이 받아왔던 차별의 근거는 시간강사들이 교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제 그들도 교원이라는 지위를 갖게 되었다. 누군가는 강사가 교원이 되면 돈을 많이 버느냐고 묻는데 노예로부터 해방된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강사법을 만들었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주인집에서 쫓겨나 굶어죽게 생겼는데 왜 해방시키느냐는 말과 같다. 어떤 국립대 교수가 익명의 시간강사의 입을 빌려 강사들은 강의료만 올리면 되는데 교원을 요구하는 바람에 강사가 다 죽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시간강사를 노비문서가 사라지면서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주던 주인집에서 나와야했던 머슴들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 국립대교수는 한때 맑스주의자였다고 한다.
  강사는 교원이다. 대학은 강사의 교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통상 학생들이 교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권리의 침해라고 하는 것은 늘 권력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므로 강사의 교권 보호는 전임교원과 대학본부라는 권력으로부터의 보호를 말한다. 노예제는 사라졌지만 조현아는 있는 것이고, 그리고 조현아가 있는 한 박창진도 나오게 되어 있다. 물론 예전의 관행대로 강사의 교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나올 것인데,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인지 대학들은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강사를 대량으로 해고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학들이 돈이 남아 돌아서 강사들한테 수업을 맡긴 것이 아니었으니, 이들을 해고하려니 달리 방법이 없다. 가장 수월한 방법이 전임교수들한테 수업을 더 맡기는 것이다. 전임교수들은 지금도 책임시수를 훌쩍 넘어서 수업을 하느라 허덕이고 있지만, 많은 대학들에서는 이 방법이 가장 잘 통한다. 그러나 이들 대학들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대학일 뿐이고, 미래에도 살아남고자 하는 대학들은 그럴 수가 없다. 미래를 살고자 하는 대학에서는 여전히 전임교원들의 연구가 중요하고, 그래서 이들 대학에서는 대규모강좌와 사이버수업을 확대하고 강좌수를 줄이고 심지어 졸업이수학점을 줄이기도 한다. 강사를 해고하기 위해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인데,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이에 대해 학생들한테 취업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대학이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학위 장사를 하는 곳이라고 실토한 것인가?
  대학에 돈이 없다고 한다. 대학 강사는 대학 교육의 30% 이상을 담당했지만 인건비 규모는 전체 교원 인건비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1년에 1천만 원 남짓한 돈을 버는 데도 강사들은 대학에 남아 있으며, 이들에 의해 대학은 근근이 유지되어 왔다. 강사를 자르기 위해 대학의 존재 기반인 수업을 없애야 할 지경이라면 그 대학은 문을 닫는 게 맞다. 이들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문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고, 오직 자신들의 존속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력이 다했으나 죽지 않는 좀비 대학.
  강사의 임용기간은 1년 이상이다. 원격대학의 강사나 학기 중에 발생한 교원의 6개월 미만의 병가·출산휴가·휴직·파견·징계·연구년(6개월 이하) 또는 교원의 직위해제·퇴직·면직으로 학기 잔여기간에 대하여 긴급하게 대체할 강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1년 미만으로 임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경우는 ‘학기 중에 발생한’ 경우여야 한다. 학기 중에 교원이 파면이 된다거나 할 경우에는 공개채용의 과정을 거쳐 잔여기간 동안 강의를 맡길 수 없으니 이런 경우에만 긴급대체 강사의 임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긴급대체 강사야말로 원래 시간강사의 역할이었다. 이러한 경우에만 시간강사를 고용해야 했는데 대학이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 바람에 소위 말하는 ‘시간강사 문제’가 수십 년 간 지속되어 온 것이다. 강사법은 대학교원제도 정상화의 첫걸음이다.
  강사의 수업시수는 6시간 이하이다. 지금까지 대학에서 강사를 많이 고용할 수밖에 없었던 한 가지 이유는 대학의 전공이 워낙 다양했기 때문인데, 강사 수를 줄이기 위해 무리하게 한 강사한테 6시간씩 시수를 몰아주게 되면 그만큼 강좌의 다양성이 훼손된다. 그리고 이는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와 대학원의 몰락뿐 아니라 학문의 다양성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강사들한테 매학기 6시간을 배정하면 강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강사는 한 과목만 수업할 수 있고 6시간 수업을 하면 강의 질이 떨어진다면 매학기 9시간씩 수업을 하는 전임교원, 즉 매학기 세 과목을 하는 전임교원의 강의 질은 어찌 되는가? 중등교사는 한 과목만 수업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 술 더 떠 강사를 해고하기 위해 전임교원들에게 네 과목, 다섯 과목씩 맡으라고 강요하고 있으니 그 대학들을 어디 대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서울대 학장단은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사회수요에 부응하고 선도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시의성·다양성·유연성 확보가 절실”한데 “단기임용을 제한하는 강사법은 이러한 요구를 실현하기 힘들다”고 말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강사들을 1년 이상 임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데, 서울대에서 개설하는 강좌는 1년도 지속하지 못하는가? 서울대 학장단이 해야 할 일은 강사들을 6개월마다 자를 수 있도록 요구할 것이 아니라 1년도 지속하지 못할 강좌를 개설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다.
  대학에는 교수가 많다. 교수 수는 적어도 그 이름은 많다. 정교수, 부교수 등의 정규직 교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 교수들이 있으니, 강사뿐 아니라 겸임교수, 초빙교수, 기금교수, 연구교수, 특임교수, 등등 무려 30가지가 넘는다. 대학에서 한 시간을 강의하더라도 강의를 하는 자는 모두 교원이어야 한다. 그러나 강사는 교원이 되었지만, 겸임·초빙교원 등은 여전히 교원이 아니다. 이들은 교원은 아니지만 그 자격조건과 사용사유가 법령으로 마련되었다. 겸임교원은 원소속 기관에서 상시적으로 근무하고 있는 현직 근로자, 즉 정규직 노동자여야 하고, 순수 학술이론 과목이 아니라 실무·실험·실기 등 산업체 등의 현장 실무경험을 필요로 하는 교과를 담당한다. 초빙교원 등은 임용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하고 특수한 교과를 교수하기 위해서 임용한다.
  문제가 하나 있는데, 초빙교원 등이 담당하는 ‘특수한 교과’가 무엇이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학이 상식 이하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학의 한 관계자가 공식 회의석상에서 대학에서 개설되는 강좌는 모두 특수한 교과가 아니냐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저 규정을 만든 사람에 대한 모독이다. 모두가 다 특수한 교과면 특수한 교과를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은 그동안 초빙교원에게 글쓰기 등의 과목을 맡겼는데, 글쓰기 과목을 특수한 교과라고 하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겁내지 않는 대학이 나올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이 문제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지성의 전당이라 자처하는 대학에서 특수한 교과가 무엇인지도 스스로 규정하지 못해서 판사한테 판단을 구걸하는 치욕을 겪게 될 것이다.

이상룡 부산대학교 강사(철학)/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