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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있고 중국엔 없는 中 좌익혁명가
한국엔 있고 중국엔 없는 中 좌익혁명가
  • 교수신문
  • 승인 2019.05.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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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11)-불온한 루쉰

 

서랍을 뒤지다 보니 노신 사진들이 나온다. 상해노신기념관에서 산 그의 사진이다. 자기 사진도 안 찍고 다니지만 그의 사진만큼은 탐이 났나보다. 노신의 사진은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1930년 9월의 것이다. 아내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은 33년 9월 13일의 것이다. 사진 속 노신은 모두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사진 가운데 하나를 철제 캐비닛에 자석으로 붙이면서 중국에서 요즘 돌아가고 있는 노신에 대한 불온한 공작을 전한다.
노신, 요즘 학생들에게는 루쉰(魯迅: 1881-1936)으로 통한다. 본명은 주수인(周樹人)인데, 본명이 더 호 같다. ‘두루 나무 심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루신은 투르게네프의 소설 ‘루딘’(Rudin, 1855)에서 나왔다. 자신도 파리 혁명의 마지막 날에 마차 등으로 싸놓은 바리케이드에서 붉은 기를 흔들며 죽기를 희망하면서. 그의 동생은 주작인(周作人)으로 작가이자 번역가였다. 루신과 함께 유럽문학을 번역했다.
루쉰은 우리나라 사전에도 마르크스주의, 문학계의 통일전선,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는 말로 소개된다. 한마디로 그는 좌익혁명가였던 셈이다. 그랬던 그가 중국의 국어교과서에서 빠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거다.
나의 상식으로는 루쉰이 어떻게 중국교과서에서 빠지게 되었는지, 빠져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나만 하더라도 루신이 우리 교과서에 실려있던 시절을 살았다. 당시 내 또래의 화교에게 루쉰을 말했는데 그를 모르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시내 자장면 집 아들이었는데, 그는 노신을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야 할 게 된 일이지만, 자유중국 대만만 하더라도 루쉰에 대해서는 좌파작가로 취급해서 교과서에 오를 수 없었던 것이고,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좌파는 안 되지만 루쉰 정도면 이웃나라 사람이고 문학성도 높아서 교과서에 실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월북작가에게는 엄격했어도 다른 나라의 좌파작가에게는 그런대로 관용적이었던 것 같다. 루쉰은 작가연맹을 조직하여 장개석의 국민당에게 수배 당하기도 한다.
그런 루쉰이 중국의 젊은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빠졌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중국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산당에 의해서건, 교육부에 의해서건, 학계에 의해서건 상관없이 일대사건으로 보인다.
아Q가 더 이상 중국인의 나약한 심성을 대변할 수 없는 사회, 자기 위안으로 더 이상 사회적인 책무감을 느끼지 않는 비굴한 지식인을 그려낼 수 없는 사회, 군집 속에서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더 이상 주제가 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인가? 오직 희망찬 ‘중국의 꿈’(中國夢)만이 길몽이고,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광인의 일기는 이제는 오로지 흉몽으로 취급되어야 하는가?
중국사회과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젊은 여자 교수에게 루신이 교과서에 나오지 않게 된 상황을 따져 물었다. 옆에 앉은 교수가 그를 걸출한 학자라고 소개한 직후였다. 그런데 잠시 생각한 듯 느지막이 나온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루쉰, 어렵잖아요. 학생들이 읽어도 이해 못하는데 굳이 교과서에 실어야 하나요?”
참네, 그 나이의 나는 루쉰을 이해했나? ‘아Q정전’이라는 말의 어법도 몰랐고, 그 내용이 담고 있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면을 어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사진 속에서처럼 늘 담배를 들고 있는 그 겉멋만 보일 수밖에는. 그럼에도 그때 읽은 그것이 나중에는 이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중요하지 않은가?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옛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을. 내가 부모 되어 알아보리라’라는 가사처럼 젊은이가 언젠가 이해할 그날이 중요한 것 아닌가?

정세근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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