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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가벼움-10) 배경] '지하철 여인' - '시내버스 여인'... 누가 더 예뻐보일까
[철학자의 가벼움-10) 배경] '지하철 여인' - '시내버스 여인'... 누가 더 예뻐보일까
  • 교수신문
  • 승인 2019.05.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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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교수
정세근 교수

 

아침에 운동을 나갔다가 순간 당황했다. 단순히 운동기구의 위치가 바뀌었는데도 운동기구조차 다르게 느껴져서 주춤 놀랐다. 아니, 대상의 배경만 바뀌었는데도 대상조차 다르게 보이다니, 흥미로운 현상이다.
운동기구가 창을 기준으로 A, B, C 이렇게 놓여있었는데 갑자기 C, B, A로 놓여있던 것이다. A는 등을 유리벽 쪽을 뒤에 두고 너른 공간을 바라보며 팔 운동을 하는 것이라면, C는 유리벽을 앞으로 보고 건너편 공간을 바라보며 팔 운동을 하는 것이다. A는 팔로 앞으로 미는, C는 팔로 위에서 당기는 기구인데 늘 만지던 같은 것인데도 왜 내게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참으로 요상했다.
왜 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기껏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앞이 가려지는 기구는 벽을 보고 운동해도 되는데(어차피 잘 안보이니), 앞이 가려지지 않는 기구는 TV를 보며 슬슬 갖고 놀려는 생각(천천히 양만큼 근육을 쓰면서)이 아닐까 싶었다. 공간의 배치로는 A, B, C가 옳다. C, B, A가 되면 기둥 때문에 통로가 다소 막힌다. 그런데도 옮겨놓은 것 보면 누군가의 ‘편안함’이 그 안에 반영이 된 것 아닌가 싶다. 그 육중한 기구를 옮기려면 적어도 네 사람 이상이 동원되었을 텐데 그 누군가의 의견도 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나한테는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는 일이긴 하다. 다만 배경이 달라졌다고 늘 갖고 만지던 기구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 현상이 오히려 궁금할 뿐이다.
이렇게 물어보자.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재밌게 표현해보자. 여인 대신 남자를 대입해도 좋다. 서울이다.
첫째, 지하철의 여인이 예뻐 보일까, 시내버스의 여인이 예뻐 보일까? 아무래도 지하철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찍더라도 주요장면에서는 지하철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시내버스는 주로 창문 열고 헤어질 때고.
둘째, 지하철1호선의 여인이 예뻐 보일까, 2호선의 여인이 예뻐 보일까? 오래된 낡은 열차보다는 그래도 새것인 2호선을 타고 있는 여인이 좀 더 세련돼 보이지 않을까? 지하철1호선은 독일의 극작을 흉내 낸 뮤지컬 제목으로 쓰인 적도 있다. 고단한 서민의 삶을 드러내는. 
셋째, 지하철2호선이라고 하더라도 한강의 노을을 배경으로 서있는 여인이 예뻐 보일까, 신도림과 같이 복잡한 환승역을 배경으로 서있는 여인이 예뻐 보일까? 너른 한강이 서해로 빠지는 풍경을 뒤로 한 여인이 아무래도 오가는 사람이 많은 산만한 공간보다는 나을 것이다.
넷째, 더 나아가보자. 지하철2호선에 탄 여인이라도 그 노선이 표방하는 초록색 옷(포인트라도)을 입은 여인이 예뻐 보일까, 아니면 그 색과 무관하게 치장한 여인이 예뻐 보일까? ‘(색)깔맞춤’은 아니더라도 눈에 순한 색은 있지 않을까?
오늘 운동기구를 보며 사람들이 멋진 배경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는 까닭을 비로소 알 것 같다.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기 싫어서 여행을 다니면서도 남은 사진이 거의 없다. 풍경을 즐겨야지 사진 찍느라 바쁜 것이 싫어서 그랬다. 아름다운 풍경을 누릴 시간도 많지 않은데, 그리 부산해서 뭐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생각은 당연히 다르다. 가장 오래 풍경을 즐기려면 사진을 찍고 그 안에 자신을 그 풍경에 박아놓아야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카멜레온이 못되지만, 사람의 눈은 카멜레온을 닮은 것 같다. 카멜레온이 하등동물이라면 사람의 눈도 하등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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