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8:25 (금)
다시 묻는 대학의 존재 이유
다시 묻는 대학의 존재 이유
  • 교수신문
  • 승인 2019.05.13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대권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대권 명예교수
최대권 명예교수

대학은 학문하는 곳이다. 학문이란 원초적인 의미에서 진리 또는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는 활동이다.  종래 당연시 되었거나 진리라고 여겼던 통념, 사고방식, 전통, 관례, 제도 등과 어긋나면 학문은 문제가 된다. 자유스런 학문 활동은 통념적인 생각이나 제도에 의해 저항 내지 탄압을 받을 수 있는 반면에 진리탐구가 궁극적으로는 사회에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는 엔진이다.
대학은 학문 활동의 축과 함께 교육 활동의  두 축을 지니고 있다. 대학을 구성하는 교수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학문 활동(research)과 교육(teaching)인데, 모든 교수가 다 학문을 하는 학자(scholar)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학문의 뒷받침 없이 좋은 교수(teacher)일 수는 없다. 대학교육에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학문후세대라고 불리는 학자=교수를 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에 바탕을 둔 대학교육을 통하여 사물을 깊고 넓게 보는 눈을 가진 지성인(Akademiker 학부졸업생)을 사회에 배출하는 것이다.
 대학은 사회의 한 부분이지만 그러나 사회로부터 그 독자성(독립성)을 지니지 못하면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의 기능 등을 포함해 대학 본연의 모습이나 기능을 잃게 된다. 헌법적으로 학문의 자유(헌법 제22조제1항)를 보장하며 대학의 자치(자율성: 헌법 제31조제4항)가 존중받도록 되어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대학으로 하여금 학문 연구와 대학 교육의 독자성을 지닐 수 있도록 담보하기 위해서다. 대학 본연의 학문과 교육 활동의 담보를 위해서는 오늘날 엄청난 재정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대학등록금의 통제를 비롯해서 연구?교육시설 건설?확충 등의 재정지원제도, 학술진흥재단 등의 교수 연구프로젝트에 대한 재정지원 제도 등은 대학 및 교수로 하여금 연구 및 교육 활동의 재원을 거의 전적으로 국가에 의존토록 만들며 이와 함께하는 국가규제에 따르게 만드는 제도의 대표적인 예다.
 국가나 공공단체로부터 수수하는 연구비나 용역비는 학술?교육활동에 가해지는 이러한 형식적 요건들은 교수로 하여금 이를 충족하는데 매달리게 만들어 매우 바쁘게 살게 만들지만 결코 폭넓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학자의 깊이 있는 자율적 연구 및 교육 활동을 진작 시키는 것이 아니다. 연구윤리의 문제도 학문의 자율성보다는 타율적 규제를 증가시키고 있다. 더구나 대학 입시의 문제에 이르면 대학의, 그리고 교수의 자율에 맡겨진 영역은 거의 없다. 대학에 학문이, 그리고 학문하는 교수가 드물다. 아직도 선진 외국 대학의 박사를 국산 박사보다 선호한다. 대학 박사과정 교육의 질과 양이 예컨대 미국 대학의 그것에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에 크게 아우르는 학문이 없으니 학문하는 교수를 길러내지 못한다. 그리고 대학에는 마치 칸막이로 이루어진 듯이 전공영역의 연구에 안주하는 교수가 살아남는다. 아울러 당장의 실용성이 돋보이는 교수 연구와 당장의 취업에 유리한 교육이 장려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 아니라는 주장의 증거는 나라에 국가적 사회적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의례 외국사례를 찾으며 의존하는 관례가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나 소위 학계에서도 보편화돼 있는 점에서도 살필 수 있다.
 대학을 자율적?창의적인 학문 활동과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나라의 국가 발전을 위해서나 대학 발전을 위해서도 급선무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