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9:30 (금)
시장의 언어 앞에서
시장의 언어 앞에서
  • 정효구 충북대
  • 승인 2003.07.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이사

정효구/충북대 국문학

몇 해 전, 교육부라는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것을 보고 나는 한동안 충격과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대학의 교육목표는 진리탐구와 인격도야에 있다고 믿어온 나의 생각을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이 의미하는 대로 수정하는 일이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라면, 교육은 결국 인적자원을 만드는 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적자원이라 함은, 인간이 석탄이나 석유, 철강이나 시멘트와 같은 물적 자원과 동일하게, 일종의 자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이 세속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도구적 기능을 감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목표가 도구적인 인적자원의 양성에만 있는 것처럼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을 정부가 공식화할 때, 그 부작용은 적지 않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를 지칭하는 명칭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교수와 학생은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급자는 수요자의 요구를 대폭 들어줘야 하며, 수요자로부터 공급자의 능력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말이 삽시간에 대학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공급자와 수요자, 나는 이 시장의 언어 앞에서 또 한차례 충격과 혼란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교수인 나는 선생의 모습으로 학생을 제자라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고, 격려와 보호를 해왔는데, 졸지에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이런 자세를 바꾸고, 학생들과 싸늘한 대치구도 속에서 공급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는 처지가 돼버리고 만 것이다. 교수와 학생이 진리탐구의 협력자가 아니라 시장의 상인과 고객처럼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계로 변질될 때, 우리 사회는 아마도 잃는 것이 많으리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런 분위기가 유포되자, 소위 앞서가는(?) 학교들은 졸업생들을 '애프터서비스'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신문광고를 해가며 자신들의 학교를 홍보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물론 졸업생들을 평생동안 재교육시키고 재충전시키는 데 학교와 교수가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를 물건의 사후관리에나 쓰는 시장의 용어를 빌려와 설명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저버리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 그지없다.

여기에 한 수 더 떠서, 일간지들은 대학생들이 취직 전에 '몸값'을 올리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을 내놓곤 했다. 그들의 조언은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지만, 인간의 가치를 '몸값'이라는 용어로 명명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가치를 '몸값'이라는 말로 표현할 때, 인간은 슈퍼마켓 속의 과자나 아이스크림, 전자제품 가게의 냉장고나 선풍기와 전혀 다를 게 없는 도구적이며 상품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그 많은 대학이 시장의 논리에 내몰리자, 몇몇 대학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의 대중매체를 통하여 이른바 '광고'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돈과 인력을 들여 이 '광고'에 매달린 학교들의 광고내용을 보면 그것은 학교의 진실을 알리기보다, 기업이 시장 속에서 물건을 광고할 때처럼 고객을 유인하고 홀리기 위한 이른바 '작전'의 성격을 적지 않게 지니고 있었다. 대학도 기업과 마찬가지 존재이며, 이 시장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에 대해 아무런 비판을 가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학이야말로 진리탐구와 인격도야의 장이라는 고전적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으니. 나는 너무나도 순진하고 아둔한 존재인지 모르겠다.

인간과 대학이 시장에 내몰린 지금, 더욱이 그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할 것 같지 않은 이 시대에, 나는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며, 또 나 스스로 문학 연구자의 길을 걸어가며, 문학은 적어도 자신의 영혼을 끝까지 팔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산물이라고, 문학은 자신의 영혼을 끝까지 시들지 않게 만들려는 양식이라고, 문학은 최종적으로 자기자신의 삶을 자율과 自遊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이끌어가려는 양식이라고 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 나는 과연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인지, 시대를 벗어난 존재인지 알 수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