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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무덤기행(4)] 꽃은 말고..."상록수 한가지, 내 묘석 앞에 산뜻하게 놓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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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19.05.0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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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 '자유'를 찾고/싸우다/죽다
옛 헌병대 건물 자리의 세종경찰서 부강파출소.
옛 헌병대 건물 자리의 세종경찰서 부강파출소.

 

1. 조선의 두 풍경 - 자연과 비참
‘홀로’ 산에서 누리는 ‘자유’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수기』에 보면,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무리 힘들어도 쓰러지지 않는 강한 아이’였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또 다른 즐거운 세계를 발견하곤 했다. 사람들을 멀리하며 “혼자가 되는 것”이 좋았다. 가을이면 밤나무가 심겨져 있는 고모네 소유의 퇴메(臺山)에 올라, 몸이 허약한 고모부를 대신하여 밤을 줍곤 했다. 그 산은 예전에 고모부가 철도국에 근무했을 때 사둔 것인데, 가을이 되면 밤나무는 상당한 수입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가 밤알 줍기를 좋아한 것은 “산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조정민 옮김, 같은 책, 131쪽 참조).    

조선인 울음소리 들리는 ‘서북쪽의 헌병대’
퇴메는 산이 아니고 언덕이라고 말할 정도로 낮은 산이었다. 그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면 부강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보는 방향에 따라 풍경을 대비 시켜놓은 점이다. 한쪽은 유쾌하고, 한쪽은 불쾌하다. 먼저 불쾌한 ‘서북쪽’이다.  

   서북쪽에는 논과 받을 사이에 두고 정차장과 여관, 그 외의 건물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마을다운 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헌병대 건물이다. 카키색 제복을 입은 헌병이 조선인을 뜰로 끌고 와 옷을 벗기고는 맨살 엉덩이를 채찍질한다. 하나, 두울 헌병의 새된 목소리가 들린다. 맞는 조선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광경을 보면 기분이 상한다. (조정민 옮김, 같은 책, 133쪽).     

가네코는 헌병이 조선인을 구타할 때 터져 나오는 비참한 울음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옛 헌병대 자리, 그곳은 지금 세종경찰서 ‘부강파출소’가 들어서 있다. 마당에 자라는 나무가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경찰들에게 물어봐도 일제강점기 이곳에 헌병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가네코의 진술은 일시적 상황이 아니다. 1920년대에 이곳에서 사회적 공분(公憤)을 살만할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동아일보》1924년 8월 12일자에는, 일본 형사가 조선부녀자를 취조하는 중에 탈의를 강요했고 이 부녀자는 치욕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소개돼 있다. 부강의 주재 기자는 그 만행을, “경찰은 자성하라”며 비분강개한 어조로 개탄하였다. 당시의 대표적 인 종합 월간지 『개벽』51호(1924년 9월 1일)에도 잉태 한 부인에게 야만적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그녀가 결국 금강에 투신자살하게 만든 형사들의 행동에 대해 “이것이 소위 현대 문명인의 체면인가?”라며 묻고 있다(『부강면지』, 765-6쪽 참조).
가네코가 경험한 불쾌한 서북쪽은, 한편 “만주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과 모래가 섞여 가차 없이 얼굴과 다리를 때리는” 추운 겨울, 영하의 추위(조정민 옮김, 104쪽 참조)로도 기억되어 있었다.

거짓이 없는 ‘남쪽의 목가적 자연’ 
가네코는 이런 기분이 상하는 광경에서 눈을 돌린다. 뒤돌아 ‘남쪽’을 보며, 조선인 울음소리 들리는 ‘서북쪽의 헌병대’와 대비되는 ‘목가적 자연’을 만난다.

   뒤돌아 남쪽을 본다. 우뚝 솟은 부용봉(芙蓉峯)이 멀리 보인다. 산기슭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백강(白江: 금강)은 가을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여 마치 흰 비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강 옆 모래밭 위로 짐을 실은 당나귀가 깨나른한 듯 지나간다. 나무 사이로 낮은 초가지붕의 조선인 마을이 드문드문 보인다. 안개에 싸인 고요한 마을이다. 중국 남종화(南宗畵)를 보는 듯하다.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태어나 살아 있음을 느낀다. 느긋하게 풀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높고 높은 하늘이다. 나는 그 끝이 궁금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 풀이 속삭인다. 다시 눈을 뜨면 잠자리가 눈앞에서 날고 있다. 방울벌레, 청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조정민 옮김, 133쪽)

이런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녀는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태어나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녀는 “산에서 지내는 날만큼은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로지 산에서 지내는 날에만 해방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아아, 자연! 자연에는 거짓이 없다. 자연은 솔직하고 자유롭다. 인간과 같이 사람들을 짓누르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이 느낀다. “고마워.” 산에게 감사하고 싶다. 동시에 지금의 나의 일상이 떠올라 울고 싶어진다. 그럴 때는 실컷 울어버린다. 산에서 지내는 날만큼은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로지 산에서 지내는 날에만 해방될 수 있었다.”(조정민 옮김, 134쪽)
그렇다. 『노자』는 말한다. “하늘의 도는 높은 것은 누르고, 낮은 것은 들어올린다. 하늘의 도는 남음이 있는 것을 덜어내어서 모자라는 것을 도와주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다. 모자라는 쪽을 덜어서 남음이 있는 쪽을 받든다.”(天之道…, 高者抑之, 下者擧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고.
가네코가 만난 자연은 ‘역사를 벗어난 자유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역사적 현실(일제강점하의 조선, 억압 속의 고모네집)은 숨 막히는 감옥이었다. 그럴 때, 가네코가 기댔던 자연 - 부강의  풍경. 문득 내 머리 속에 노란 풍경 하나가 스치고 지나간다. ‘델프트의 풍경’에 나오는 황금빛 교회 벽면의 풍광이다. 네덜란드의 델프트에 태어나서 평생 거기서만 살았던 베르메르가 그린 명작.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베르고트가 ‘델프트의 풍경’의 황금빛 교회 벽면으로 다가가 결국 숨을 거둔다. 그렇듯 최후의 광경은 죽음으로서만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어휘 같은 것이리라. 비참함 속에서 거짓이 없는 ‘남쪽의 목가적 자연’이란 마치 ‘델프트의 풍경’에 나오는 황금빛 교회 벽면처럼 도드라졌을 것이다. 그녀의 인생에서 ‘휙, 지나갔던 그 곳’, 그러나 풍경은 풍경일 뿐. 과연 가네코가 기댈 현실은 어디인가. ‘홀로’ 산에서 누리는 ‘자유’가 아니라 현실 속의 자유는 어떻게 획득 될 것인가.

 

박기동의 시 ‘부용산’을 떠올리다
부강을 떠나며, 부용산을 바라본다. ‘부용=연꽃’이 떠오르기 보다는 벌교 출신 박기동의 시 부용산이 떠오른다. “부용산 오리길에/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 사이로/회오리바람 타고/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너는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부용산 봉우리엔/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목포 항도여중 교사였던 박기동은 여동생 박영애가 폐결핵을 앓다가 24살로 요절하자 그녀를 부용산에 묻고 내려오면서 이 시를 썼단다. 이 애잔하고도 아름다운 시를 접한 같은 학교 작곡가 안성현이, 마침 자신이 가르치던 16살 여제자인 김경희가 요절하자 그 슬픔을 담아, 박기동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23세로 요절한 가네코에게도, 부용산이라는 시와 노래는 결코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2. 종교를 찾고, 종교를 버리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종교를 찾다
가네코는 조선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뒤, 야마나시에 있는 외가로 갔다. 그 뒤에 다시 아버지가 있는 하마마쓰로 갔으나 충돌. 도쿄로 나와 시타야구 미와마치에 사는 작은 외할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그러던 중 자활을 위해 신문팔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빚만 지고 쫓겨난다. 아무 대책도 없이, 갈 곳 없이 헤매던 그녀는 절박했다. 마침 이토라는 사람을 통해 알게 된 구세군 소대장 아키바라를 찾아간다. 실오라기를 잡는 듯한 참담한 상황에서 교회의 임시 집회에 참석한다. 이토는 테이블 다리 밑에 꿇어 앉아 그녀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드디어 그녀는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나는 왠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내가 의지할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소대장의 발밑까지 가 있었다. 그리고 소대장 발밑에 엎드려 그저 울기만 하였다. (…) 무언가에 올린 듯, 나는 감격해하고 있었다. 일체의 고민을 잊어버리고, 모두와 함께 신을 찬미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신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조정민 옮김, 270-1쪽) 
가네코의 『옥중수기』를 읽고 있으면 뭐랄까, 릴케의 『말테의 수기』 첫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도쿄는, ‘살기 위 한 곳’이 아니라 ‘거기서 죽을 것 같은’ 조바심만 든다.

신과 종교, “나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다”
가네코는 이토의 도움으로 혼고구 유시마의 신하나쵸에 방을 하나 얻어 살면서 밤에 가루비누를 팔았다. 그러나 힘만 들었지 돈은 벌지도 못했다. 이토는 그녀에게 “일요일 아침 예배에는 반드시 참석하라,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기도를 하라”고 했다. 이토는 기도가 ‘힘’이 될 거라 했지만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토의 말이 잘 이해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토가 시키는 대로 교회에도 나갔고, 기도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적을 믿을 수 없었다. 여전히 가난하기만 했다. 

   나는 기적을 믿을 수 없었다. (…) 이토만을 믿고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기도도 하였으며, 봉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남 몰래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모두 이토가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처럼 나는 신을 믿고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다. 하지만 아무런 보답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사흘이나 굶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일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작은 일 하나 구할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방세가 밀렸다며 집주인이 찾아 왔지만, 당연히 방세를 낼 돈은 없었다.(조정민 옮김, 같은 책, 282쪽)

옛 헌병대 자리에서 자라는 나무
옛 헌병대 자리에서 자라는 나무


   ‘신(神)’ - 때로는 대단히 산만해지는 나의 마음을 질책하고 그것을 통솔하기 위해, 사상에 핵심을 부여하기 위해 ‘신’을 생각한 적도 없지 않았습니다. 만약 신이라는 관념에 의해 영원히 불변하는 이른바 안심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 경우 나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내가 외곬수인 데다 억지를 부렸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신은 나를 조소하고 말았습니다. 왜일까요, 신의 사도가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쓰다 남겨둔 저서를 내가 조롱하고 싶어지는 것은.
   오랫동안 고뇌하다가 나는 결국 나 자신을 비웃으면서, 신이나 안심 따위에 매달리고 있는 자신으로부터 깨끗이 빠져나와 버렸습니다. 신이나 ‘죽음의 공포’를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야마다쇼지, 앞의 책, 385-6쪽)

가네코는 ‘신’에 의존하지 않게 되고, 신과 종교를 요청한 ‘죽음의 공포’마저도 잊어버렸다. 자신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신과 종교를 떠나 결국 그녀는 최후의 의지처인 ‘나’에게로 돌아갔다.

3. ‘?주의/주의자’에서 ‘개체로서의 자아’로
‘주의자’를 찾고, 환멸을 느끼다
가네코의 『옥중수기』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등과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녀는 ‘?주의/주의자’를 찾고, 환멸을 느낀다.
 “설탕가게에서 나와서 이른바 ‘주의자’들의 집을 한 두 곳 전전하다가…”(조정민 옮김, 298쪽); “사회주의는 나에게 특별한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300쪽); “지금까지 ‘주의자’들은 뭔가 일종의 특별한, 위대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공상이었는지 명확해진 것이다. 아름다운 천상의 꿈에서 더러운 하수구 속으로 떨어진 듯이 환멸스러웠다.”(317쪽) 

‘나만의 사상’, 아나키즘으로
가네코가 박열을 처음 만났을 때, 박열에게 그녀는 “한 가지 물어볼게요. 당신은 민족운동가인가요? (중략) 당신이 만약 독립운동가라면 유감스럽지만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어요.”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박열이 “조선의 민족운동자들을 동정할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소. 나도 과거에는 민족운동에 참여하려고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소.”라고 말했다.
이에 가네코는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당신은 민족운동을 반대하는 입장인가요?” 박열이 이렇게 대답했다.“아니, 결코. 그러나 나는 나만의 사상이 있소. 나만의 일이 있소. 나는 민족운동의 전선에 설 수는 없소.”(338쪽)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가네코는 박열에게 이끌려 들어가고, 그와 함께 일을 하려고 결심한다. ‘나만의 사상’이란 아나키즘이다.
그녀는 『옥중수기』에서 박열에 대해 소개를 한 뒤, 박열이 독립운동의 ‘허구성’을 감지하게 되었다고 기록한다: “…그의 사상은 점점 왼쪽으로 기울게 되었다./독립운동에 관여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운동의 허구성을 감지했다. 지배자가 바뀐들 민중에게는 전혀 영향이 미치지 않음을 간파했던 것이다.”(339-40쪽). ‘허구성’이란 ‘지배자가 바뀌어도 민중에게는 전혀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네코는 박열이 “직접적인 민족운동가는 아니지만 언제나 자아에서 출발하여 그 운동을 위해 생명을 걸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고 진술하였다(재판기록). 이에 대해 야마다는 『가네코 후미코』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는 가네코가 박열을 자신에게 맞추어 해석한 것이다. 가네코가 자기를 철저하게 투시함으로써 비전향 즉 반천황제를 관철시키고자 했던 데 비해, 자기 사상의 기저에 민족을 두고 있었던 박열은 그녀만큼 자아를 깊이 있게 탐색하지는 않는다. 제국주의 나라의 국민은 내셔널리즘으로부터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리고 당연하게도 억압받는 식민지 민족의 구성원에게는 개인의 해방보다 민족해방이 우선하는 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민족과 개체로서의 자아의 관계를 심도 있게 묻지 않은 것은, 박열이 얼마 안 있어 옥중에서 조선 민족으로부터 이반하여 천황제에 굴복하고 전향한 내적 원인이 아니었을까.”(정선태 옮김, 115쪽) 가네코는 재판기록에서, “나는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살아가기 보다는 오히려 죽어 끝까지 나 자신의 내면적 요구를 따를 것입니다.”(195쪽)라는 태도로 전향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 자신의 내면적 요구’에 충실했다.

가네코의 아나키즘은 사회변혁적? 개인주의적?
야마다가 지적한대로, ‘민족’과 ‘개체로서의 자아’의 관계에서 박열은 두 가지가 ‘일치’되어 있었고, 가네코는 분리되어 있었다. 아울러 박열은 ‘민족’의 해방 쪽에, 가네코는 ‘개체로서의 자아’의 해방 쪽에, 중심이 놓여있었다. ‘나 자신의 내면적 요구’에 충실했던 가네코의 입장은 ‘나’ 중심이라면, 박열의 경우는 당연히 ‘민족’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박열과 가네코가 천황과 황태자를 폭탄투척의 대상으로 삼는 사회의 변혁과 폭력을 동반한다는 점에서는, 둘 다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 류의 사회변혁적 아나키즘에 속한다고 하겠다. 다만 가네코의 경우, 막스 슈티르너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과 어느 정도 통할 점이 있다고 본다. 

4. 글을 마치며
좀 긴 시간 가네코 후미코를 붙들고 있었다. 그녀를 좀 더 오래 ‘기억’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의 방법은 그녀의 생각과 그 현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생각할 때, 더구나 국가를 넘어선 양국의 민간의 교류를 생각할 때, ‘민족적 에고’를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서’ 가네코를 회상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 것이다.
 
오구마 히데오(小熊秀雄. 1901-1940)의 ‘長長秋夜’ 생각
이쯤에서, 나는 시인 오구마 히데오(小熊秀雄. 1901-1940)의 시 ‘長長秋夜’를 떠올렸으면 한다. “길고 긴 가을 밤/조선이여, 울지 마라!/울지 마라, 할멈이여!/꽃 다운 처녀들아, 울지마라!/다듬잇돌이 비웃겠다!/똑딱, 똑딱, 똑딱.…” 그는 침략국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식민지 조선의 고통 받는 민중의 현실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긴 시로 작품화하였다. 시를 통해 그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폭로하고, 조선민족의 저력으로 이 상황을 극복해나가기를 염원하였다. 어느 곳, 어느 시대이든,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이 세상의 등불이 되어 어둠을 밝힌다. 일본의 양심들 가운데서 가네코 후미코는 좀 특별한 경우이다.   

“피었다가 시드는 꽃보다, 상록수를”
이제 글을 마친다. 마지막으로 ‘수취인 불명/연월일 불명’의 ‘옥중 편지’에 나오는, 가네코 후미코의 유언 같은 글을 실어둔다.
 
   만약 당신이 나를 추억 속에서 그리다가 혹시 적막한 나의 마음을 채워주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 새싹을 피워 올리고 있는 상록수 한 가지를 내 묘석(墓石) 앞에 산뜻하게 놓아주세요.
   나는 피었다가 곧 시들어 버리는 풀과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사람의 눈에 띄지도 않지만, 언제나 푸르게 하늘을 향해 활짝 피어나는 상록수의 새싹을 나는 끝없이 사랑합니다.
   그럼 새롭게 뻗어오를 상록수의 새싹, 하늘을 향하여 당당하고 기운차게 피어오를 새싹이 그 어느 날엔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고, 나는 이렇게 당신에게 최후의 편지를 드립니다.
   방랑자vagabond - 당신의 행복을 기원합니다…그럼 정말 안녕히(정선태 옮김, 같은 책, 387쪽)

누군가 가네코의 무덤에 가거들랑, 그녀의 유언대로, ‘상록수 한 가지’를 ‘묘석(墓石) 앞에 산뜻하게’ 놓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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