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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쟁점: 법학용어·문장, 개선 시급하다
학술쟁점: 법학용어·문장, 개선 시급하다
  • 김동훈 국민대
  • 승인 2003.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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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도 쩔쩔매는 판결문, 고유어법은 인정해야

 지난 15일 국립국어연구원은 '국민의 글쓰기 능력 향상 방안 마련'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김광해 서울대 교수(국어교육학)는 '공무원의 글쓰기 능력에 대한 진단과 대책'이라는 발표를 통해 법조계의 글쓰기가 "띄어쓰기, 맞춤법 등 단순한 어문 규범뿐만 아니라, 단어·문법·문장 구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에 대한 법학자의 자성과 변론의 소리를 들어본다.

 김동훈/ 국민대 ·법학 

법학의 주된 비중을 차지하는 이른바 '해석법학'을 연구하는 필자에게 공부의 일차적인 재료는 바로 해석의 대상인 법령과 그 법령을 구체적 사안에 적용한 법원의 판결문이다. 법률문장의 양대 근원을 이루는 이들 문장이 문제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국어학자들로부터 법률문장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따로 찾을 필요도 없이 무작위로 문장을 골라내면 그것이 곧 사례가 된다라는 정도의 혹평을 받고 나면 정말로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이런 문장을 기본적인 소재로 해서 세밀한 해석론이나 판례평론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법학자로서 평소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해온 것도 사실이다. 마치 오염된 대도시의 공기 속에서 살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오염된 것인지도 모르고 지나는 것과 같은 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지적 중에 물론 수긍할 것이 많다. 법률문장이라는 것은 대다수의 일반국민과의 의사소통의 수단이 돼야 할 것이고 오직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암호와 같은 것이 돼서는 안될 것임은 자명하다. 법학자로서 바라는 바도 각 가정이 대법전 하나 정도는 서가에 비치해두고, 일반인들도 인터넷에 전문이 공개되는 법원의 판결문 등을 읽고 논평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이다.

책상에 놓여있는 판결문을 읽어보니 우선 마침표를 찾기가 힘들다. 어느 분은 "대법관은 판결문 작성시 숨도 쉬지 않는가"라고 묻는데, 심지어는 한 문장이 한 면을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전문가인 나도 판결을 정신차려 읽을 때에는 한 손에 색연필을 들고 내용상 한 문장 단위로 끊어 읽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또 조금은 나아지고 있지만 각종 이중부정의 애매한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라고 보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정도는 아주 흔하게 발견된다. 이것은 아마 일본식 표현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개별문장에 있어서도 문장의 구성원리에 맞지 않는 비문이 많다고 지적된다. 또 맞춤법을 지키지 않거나 문법에 맞지 않는 조사나 어미를 쓴다거나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를 사용한다거나 뜻이 불분명하고 어순이 부적절하다는 등 그 지적은 끝이 없다.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법학자로서 이러한 비판의 다수를 수용하면서도 약간의 변호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법이 서양법을 일본을 통하여 이중으로 繼受하면서 그 용어나 표현이 생경해지고 우리의 자연스런 일상의 문법 및 용어들과 상당한 거리가 있고 게다가 권위주의 시절의 관행적 표현까지 가세되어 일반인에게 거리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선진국이고 법률용어와 그 표현방식이 일상의 언어 또는 다른 관용어와도 구별되는 독특한, 때론 다소 무거운 듯한 고유의 어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법률문장의 내재적 존재원리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법률문장이란 서술이 아니라 선언적 명제가 주를 이룬다. 이 명제들은 일정한 원칙과 그에 대한 예외로 구성돼 있다. 또 일정한 조건이 만족되면 일정한 효과가 주어진다는 인과율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이러한 원칙과 예외, 원인과 결과의 논리법칙을 다른 해석의 여지를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압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일정한 법적 문체를 만들어내게 된다.

또한 용어에 있어서도 일정한 전문적 개념의 사용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우리 법의 매매나 대차와 같은 법률용어를 북한식으로 '사고팔기', '빌려주기'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법에 있어서는 일정한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다른 유사개념과 구분하고 위계를 정하는 敎義的 작업은 가장 기본이 되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부의 안목만으로는 개선의 노력에 한계가 있음은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국립국어연구원이 본격적으로 법률문장에 조언을 해주겠다는 것에 대해 법조계는 마음을 열고 듣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법률문장의 개선이 좁게는 법학이 다른 학문과의 학제적 교류의 벽을 낮추고 넓게는 법치주의가 사회전반에 스며드는 통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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