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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해체공사' 설립을 제안한다
'원전해체공사' 설립을 제안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05.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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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김용수 원자력공학과 교수/원전해체연구센터 센터장 전격제안
김용수 교수
김용수 교수

 

지난 달 중순 정부는 그사이 논의해 오던 것들을 정리해 국내 원전해체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수명이 다한 원전을 아름답게 퇴역시키는 것은 원자력 라이프 사이클 상 탈핵, 친핵을 떠나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비전은 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 기회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원전 해체를 창의적으로, 선제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해체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떠나, 이번에 발표한 정부 전략의 큰 줄기와 방향은 공감할 수 있다.
먼저 아직 경험도 제대로 없는 우리가 2030년대 도래할 세계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다면 그 테스트 베드가 될 고리 1호기의 해체를 선도적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도 초기 일감 창출을 위한 선제적 투자를 공언했다. 남은 문제는 어떤 분야, 어떤 기술에 선 투자를 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고민이 될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 갈 것은 만약 우리가 세계 시장 진입을 목표로 원전 해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면 시간과의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2030년 대 초반까지 고리 1호기를 성공적으로 해체하지 못한다면,  지금 한창 원전 해체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과 독일 등 출중한 기술과 풍부한 경험을 보유한 국가들이 그때쯤 이미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회는 없다. 정부는 어떤 시간표를 갖고 있나? 귀를 의심케 하는 공식적인 발표는 고리 1호기 해체에 최소 12년에서 15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다. ‘최소’가 아닌 ‘최대’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매진해야 한다. 그냥 ‘최소’를 고집한다면 이 비전은 허망한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술에 투자해야 할까도 명확해진다. 당연히 그 기간에 실증까지 완료할 수 있는 신기술과 혁신 기술을 중심으로 준비된 강소 중견기업에 투자해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원천 기술은 대학과 연구기관이 연구 개발을 하더라도 산업적으로는 해외 시장 공동 진출을 전제로 한 해외 파트너쉽으로 해결해야 한다.
원전 해체에 왕도는 없다. 이미 원전 해체 선진국들은 약 20기 정도의 해체 경험을 갖고 지금도 수 십 기의 해체를 진행하고 있으나 나라마다 해체 방식이 다르고 한 나라 안에서도 플랜트별로 해체 방식이 다르다. 즉 각자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해체 조건에 따라 자신들에게 맞는 가장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체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험이 없는 나라들은 방사선이 약한 주변부부터 해체를 진행하고 있으나 미국 같은 경우는 가장 방사선이 가장 높은 원자로부터 해체를 진행하고 있다. 해체한 원자로 압력용기를 해체 중 발생하는 중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처분 용기로 사용하기도 하고 원자로 운영을 많이 하지 않았던 원자로의 경우는 내부 구조물을 절단하지 않고 통째로 처분하기도 했다. 당연히 고리 1호기 해체에도 우리의 창의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경우 세계 시장의 문턱은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원자로 압력 용기를 해체 절단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창의와는 거리가 먼, 20년 전 원전을 해체한 나라들도 하지 않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또 간혹 표준화 혹은 절차화 개발들이 논의되곤 하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원자로 설계 건설과 다른 원전 해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류이다. 여기서 첨언한다면, 기술 개발과 함께 성공적인 원전 해체를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필수 축인 전문 인력은 이처럼 글로벌한 사고를 가진 창의적 인재로 육성해야 한다.
우리의 해체 전략이 이렇게 창의적이고 전략적이고 선도적으로 진행된다면 고리 1호기의 성공적 해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2015년 6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언 이후 진행된 국내 해체 관련 사업의 진행 과정과 내용을 계속 지켜 본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써,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전략적 선언과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정부와 정부 산하 기업 그리고 규제 기관 등의 역학 관계에서 볼 때 현재와 같이 발전사에게 해체 관련 모든 문제를 알아서 풀어 가라고 맡기는 것은 난망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실제 해체의 현장 문제는 멋진 선언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이미 정부도 파악하고 있고 있는 것처럼, 기술 개발의 문제뿐만 아니라 규제 등 제도와 인프라의 문제가 곳곳에서 발목을 잡는다. 이런 문제를 피규제자인 발전 사업자가 어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제는 이 중차대한 국책 사업이 더 이상 늘어지지 않도록 우리에게도 기술 개발과 기업의 육성부터 규제와 제도의 문제까지 관계 부처와 함께 해결해 낼 수 있는 가칭 ‘원자력해체공사’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해체 대상 원자로의 형태가 흑연감속로이기 때문에 지연해체를 채택할 수 밖에 없어 실제 원전 해체는 해보지도 못한 영국이 ‘원전해체공사’를 만들어 전 세계 원전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기관은 옥상옥이 되지 않도록 이 새로운 분야를 직간접으로 잘 아는 전문가들의 집단으로 만들어야 한다. 요즈음은 이 길만이 ‘에너지 전환’을 내걸고 원전 해체를 통해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는 정부의 비전이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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