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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프로그램 없는 공영방송
책 프로그램 없는 공영방송
  • 교수신문
  • 승인 2019.04.2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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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백원근 대표
백원근 대표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었다. 독서 권장과 지적소유권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보여주는 징표 중 하나다. 책은 저자, 출판사, 도서관, 서점, 독자 등으로 이루어지는 ‘읽기-쓰기 생태계’ 안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심지어 책을 읽지 않는 독자나 읽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 세대 모두에게 공동의 기억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적인 사고와 상상력, 시공을 뛰어넘는 지혜의 온축이 모두 책에 있기 때문이다. 생각과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최고의 수단이 바로 책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불가결한 도구인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민의 권리(독서권)를 보장하기 위한 책의 생산?유통?향유가 중시된다.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서점을 포함한 책의 유통경로 시스템의 확립, 읽기 접근성을 위한 공공도서관의 운영 등이 필요하다. 단지 출판산업의 이익 창출 목적이 아니라, 시민의 독서권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가진 책의 가치사슬과 연관된 행위들까지도 공공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책에 대한 정보와 읽기를 촉진하는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전파의 공공성, 공영방송의 사회적 역할이나 소임에 비추어 책 프로그램은 공영방송의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3대 공영방송사인 한국방송공사(KBS), 문화방송(MBC),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책과 관련된 것을 단 하나도 편성하지 않고 있다. 특히 국민이 내는 시청료가 주요 재원인 한국방송공사에서는 과거에 주로 시청률이 거의 안 나오는 심야 시간에 간헐적으로 책 프로그램을 내보냈었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마찬가지로 시청료를 교부받는 한국교육방송공사의 경우 교육에 특화된 방송사임에도 유아부터 학생, 나아가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책을 다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전무하다.
  이는 공영방송의 직무유기다. 방송법은 제6조에서 방송이 사회교육 기능의 신장, 유익한 생활정보 확산, 국민 문화생활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그 공익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책이야말로 이에 합당한 소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방송법 제44조는 국가기간방송인 한국방송공사의 공적 책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데,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실현하라는 주문이다. 오락과 유사교양으로 도배된 편성표는 한심하기까지 하다. 공공도서관이 책 읽을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 공간인 것처럼, 공영방송 역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책에 관심을 갖도록 유익한 프로그램을 편성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공익성은 이상일 뿐 공영방송들은 상업방송에 뒤지지 않을 만큼 시청률에 영혼을 내주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비해 해외 각국의 공영방송들은 각종 책 프로그램을 편성해 운영한다. 상당수 상업방송들도 책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사례가 있고, 그러한 텔레비전 방송의 영향력에 의해 화제가 되거나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적지 않다. 방송의 영향력에 기인한 출판시장의 양극화 현상, 즉 ‘미디어셀러’ ‘텔레비전셀러’가 입방아에 오를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초반 <티브이, 책을 말하다> <느낌표>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가 된 시절이 있었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은 줄줄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금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유튜브 채널이다. 『언니의 독설』 『김미경의 드림 온 』 『엄마의 자존감 공부』 등을 쓴 저자이자 스피치 전문 강사인 김미경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김미경TV’가 대표적이다. 두터운 팬층과 젊은이들까지 더해지며 구독자가 60만 명이 넘는 이 인기 채널에서 소개되는 책마다 판매량이 급증하며 화제다. 이 채널에 책을 소개하기 위해 출판사들이 줄을 선다니 유튜브의 위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외에도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북튜버들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
  한국 공영방송들이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이 약화된 사이에 새로운 책 정보 수단으로 유튜브가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신세대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책 정보가 전달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빈자리와 책임론은 여전히 남는다. 방송의 공적 책임과 텔레비전의 공신력으로 ‘시청자를 독자로 만드는’ 노력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책 프로그램 하나 없는 텔레비전 방송은 마치 영혼 없는 사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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