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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제도 개선 시리즈-1 강사법 정착의 향방] 길은 있다, 뜻이 없다
[강사제도 개선 시리즈-1 강사법 정착의 향방] 길은 있다, 뜻이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04.2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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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교수의 사회'에서 대학의 자정을 기대하긴 어렵다
대학 내 연대활동, 노동조합 확대와 외부환경의 변화,
특히 교육부와 국회의 더 적극적인 조치가 앞서야 한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이 봉건적 권력을 움켜쥐고 있으니...

‘교수신문’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과 함께 ‘강사제도 개선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올 8월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강사법’이 시행됩니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강사법 영향으로 대학에서 시간강사들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간강사들이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강사법’이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교수신문’을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원들이 지난 1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강사법 개선안 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원들이 지난 1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강사법 개선안 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법 제정 노력은 시간강사 등이 고등교육과 학문 탐구에 중요한 존재하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개정 강사법과 그 시행령은 유예 강사법과 시행령의 문제점을 해소하거나 보완하면서 강사 등에게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사회적 합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비록 한국비정규교수노조의 공식 입장인 ‘정부 책임형 연구강의교수제’에는 한참 못 미쳐 그 한계가 명백하지만 정부 예산 투여, 강사 등 비전임 교원 일반의 상향평준화, 편법 방지를 위한 몇 가지 기본 원리는 조금이나마 관철되었다. 그 동안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더 나은 대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계속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2019년 1월1일 시행 예정인 유예 강사법을 막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개정 강사법 통과에 동의하였다. 2019년 8월1일이 되면 강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이지만 노동3권을 가진 교원이므로 ‘교원성’과 ‘노동자성’을 활용하여 자신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집단적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조금 더 커진다. 쥐꼬리만큼의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것이다. 매우 적긴 하지만 관련 정부 예산 지원을 따낸 것은 대학 공공성 강화에도 약간의 도움을 준다. 성숙한 학문이 양질의 고등교육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개정 강사법의 기본 원리, 즉 ‘약간의 경쟁과 권리 보장의 조합’은 ‘교육·학문적 의미’도 있다. 지금보다는 학문 다양성 증대, 협업 확대, 고등교육의 질 제고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사회의 지배층은 이러한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자원과 권한의 축소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사 수를 줄이고 공개임용을 회피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강사 대량해고와 강좌 수 축소 그리고 편법적 비전임 교원제도 운영 확대를 하고 있다. 여러 신화도 미세먼지처럼 퍼뜨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돈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과연 돈이 조금 더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대학에 돈이 많을 때도 강사 문제는 있었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해결이 되지 않았던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을 생각해 보면 이런 주장에 동의하긴 힘들다. 더욱이 개정 강사법은 임금의 구체적인 내용을 대학 자율로 하다시피해서 갑자기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다. 나중에 많이 들어봐야 대학 예산의 1% 내외 수준에 불과하기도 하다. 이를 두고 강사에 비해 5배에서 10배 이상의 인건비를 받는 사람들이 돈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4차 산업혁명과 대학 자율성 운운하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이 대학 교수사회에 그렇게 유연성을 요구하고 또 대학이 그걸 보장 해야만 한다면, 대학 사회에서 가장 고용 안정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부터 고용 불안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또한 대학의 자율성은 학문을 위한 것이지 제멋대로 짝퉁 교원을 만들거나 교수·연구자를 수탈하라고 부여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학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임교원도 다 뽑지 않으면서, 제대로 학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강의를 전임교원들이 담당하면서, 어찌 대학 자율성을 들먹일 수 있을까.
차라리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현재의 대학 재원과 권력을 내 놓기 싫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하지 않을까. 개정 강사법 제정과 그에 대한 대학 측의 대응은 철저하게 학문, 교육을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 권력투쟁의 산물이다. 현재의 강사 대량해고와 강좌 수 축소 등 대학구조조정의 심화는 지배층이 제도적 변화에 조직적으로 반응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시간강사 대량해고 사태는 2019년에 갑자기 새롭게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강사의 고용불안정성으로 인해 수시로 발생해 온 현상이 재연된 것이다.

임순광 전 한교조 위원장이 지난 2월26일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한교조
임순광 전 한교조 위원장이 지난 2월26일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한교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시간강사에 대해 9천 명 이상의 대량해고가 4차례나 일어났다. 현재와 같은 강사의 고용 지위로는 이 ‘사슬’과 ‘채찍’을 피해 갈 수 없다. 대학이 구조조정을 할 때 최우선적으로 배제되는 자는 ‘약자’이다. 청소, 경비, 조리 업무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시간강사들의 운명은 다르지 않다. 기업처럼 운영되는 대학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이들은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다. 시간강사 채용 결정권자의 ‘선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조직화되지 않은 강사들의 힘은 대학 지배층의 권력에 비해 미약하기 그지없다. 개정 강사법이 그 자체로 시간강사 대량해고를 유발한 것이 아니라, 대학의 기업화 된 운영방식과 거기에 익숙해 진 다수 기득권 대학 구성원들의 반응이 ‘약자에 대한 배제’를 선택한 결과 시간강사 대량해고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개별적 대응보다 제도적 변화와 조직적 대응이 중요하다. 그 조직적 힘이 국회와 정부를 향하면서 재단 이사회와 총장을 비롯한 대학 사회 지배층과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는 방향으로도 발휘될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개정 강사법의 핵심은 교원성 보장이다. 정년 트랙 전임 교원은 교육공무원 또는 이에 준하는 법적 지위(교원성)를 가짐으로써 총장 선거권과 피선거권, 보직 담당권, 강좌개설 신청권, 주요 회의에서의 결정권과 공간 사용 결정권 등 학내 주요 의사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개정 강사법은 이에 대해 약간의 파열구를 낼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년 트랙 전임 교원 대부분은 자신의 몫을 줄일 의사가 없다. 그렇기에 선의를 가진 일부 정년 트랙 전임 교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기득권층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년 트랙 전임교원은 흡사 작업장 관리자인 ‘모순적 중간계급’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등록금 동결, 학생 수 감소 등을 핑계로 삼지만 대학 재원이 부족한 중요 사유는 대학 최상위 임금소득자들의 인건비에 있다. 물론 이 못지않게 국가의 고등교육투자 부족, 대학 재단의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증식,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건물에 대한 중복과잉 투자 등도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정년 트랙이든 비정년 트랙이든 전임 교원들의 대학 재단에 대한 순응이나 인건비 상승에 대한 욕구는 추가 강의노동을 수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강사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지난 10년 간 이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결과 정년 트랙 전임 교원과 비전임 교원 간의 격차, 특히 시간강사와의 ‘양극화’와 시간강사의 ‘빈곤화’는 더욱 심해졌다. 정년 트랙 전임 교원 대부분은 그동안 자신이 누려왔던 대학원생과 강사에 대한 봉건적 권력관계 또한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여전히 강사 대한 선발권을 쥐어야 하고 제자든 대학 동문이든 어떤 이해관계가 일치하든 마음에 드는 지인에게 ‘강의를 주는’ 권한을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교직원들 역시 자신의 인건비가 줄어들거나 노동 강도가 심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강사 선발권 및 노동강도 강화와 직결되는 비전임 교원 공개임용은 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개정 강사법은 이들의 이해관계와 상충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정부와 국회에 로비하여 다시 개악을 시도하거나 개정 강사법을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임순광 전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임순광 전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개정 강사법 정착을 위해 피지배층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들과 공존하면서 대학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함께 살려는 의지’와 ‘비판적 사유능력의 복원’도 중요하지만, ‘죽은 교수의 사회’처럼 되어 버린 현재의 대학에서 자정 능력을 기대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강사법 정착 단계에서는 대학 내 연대 활동 강화 및 노동조합 확대와 더불어 외부 환경의 변화, 특히 교육부와 국회의 좀 더 적극적인 조치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실효성 있어 보인다. 강사제도 정착을 포함하여 대학 정상화와 민주평등대학 건설을 위한 실천공동체를 대학마다 건설하고 교수노동조합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의 확대와 단체행동이 필요하다.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대국회·대정부 활동을 통해 고등교육예산 확보와 비전임 교원 일반의 교원 법적 지위 부여 및 교원의 최대강의시수제 도입 등을 이끌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대학의 중복·과잉투자, 투기, 강좌 수·강사 수 축소 등의 교육·학문 환경 파괴 등을 예방하거나 사후 조처할 수 있는 정책적 실천 역시 시급하다. 대학의 구성원들도 눈앞에 다가 온 개정 강사법 시행을 두고 찬반 논란을 계속 벌이거나 별도의 법안을 만들어 시행을 유예하려는 전략을 펴기보다 국민들로부터 존중받는 대학을 만드는데 합심하는 게 이롭다는 인식의 전환을 하면 좋을 것이다. 개정 강사법의 사회적 합의와 입법 취지를 존중하면서 다함께 대학이 사는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질타만 받으며 재정 지원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몰락의 길로 갈 것인지 대학 구성원들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임순광 전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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