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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석학 이슈칼럼] "인문학자여, 디지털 혁명을 두려워 말라"
[글로벌석학 이슈칼럼] "인문학자여, 디지털 혁명을 두려워 말라"
  • 교수신문
  • 승인 2019.04.2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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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언더우드 교수(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영문학)

전 세계적으로 인문학 위기설이 팽배하고 있는 가운데 교수신문은 인문학을 비롯해 자연과학, 사회과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인 지성들의 목소리를 모아 인공지능 시대, 4차산업혁명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수신문은 전 세계 각 학문 분야의 최신 트렌드와 성과를 인간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NOW-글로벌 석학 칼럼'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겠습니다.

 

테드 언더우드 교수
테드 언더우드 교수

지난 10년 동안 신문에 실린 칼럼들을 읽어온 사람이면 누구나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문학 위기는 인문학 전공 학부생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으로 대표될 수 있다.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대응책 마련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 문제란 바로 인문학이 지적인 기초이기를 포기해왔으며, 그로 인해 곧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 2011년 진화 생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구글과 협력해 디지털화된 책 수백만 권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분석결과를 세계적인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하고 “컬처로믹스(culturomics)”라는 새로운 분야의 시작을 선포했다. 인문학자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격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프로젝트에 “단 한 명의 인문학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칼럼을 크게 싣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컬처로믹스는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우리의 문화적 유산들이 과학 논문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컬처로믹스를 통해 대중은 왜 힙합이 비틀즈보다 중요한지 같은 문화적 이슈를 쉬우면서도 과학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됐다.
나 자신도 인문학자다. 인문학자들이 이런 추세에 좌절감을 느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하지만 인문학자들은 자신들이 수백 년 동안 구축해온 학문적 토대가 이 컬처로믹스로 인해 더  의미가 풍부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문학자 입장에서는 서글픈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과학자들이 인문학자들과 협력을 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내지만,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서, 과학자들이 우리 인문학자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역사적인 이해 같은 분야에 의미 깊은 기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디지털화 된 책 수백만 권의 양적 분석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이제 인문학자의 도움 없이도 저널리스트나 학교 교사들이 첨단 언어학 트렌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다. <뉴욕타임스>의 지적대로, 이 프로젝트는 인문학자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현재까지 가장 대규모의 대중 인문학 프로젝트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시발점으로, 사회학자들은 문학 비평에서의 모호성의 기능을 이론화하고, 인지 과학자들은 정보 이론을 이용해 역사적 변화를 기술할 수 있게 됐다. 토머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지난 200년 동안의 역사를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을 이용해 재해석한 새로운 시도 때문이었다. 이제 인문학은 더 이상 독야청청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아픈 현실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래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자기 이해는 협력적인 프로젝트이지, 학문 간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인문학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생물학자들이 문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경제학자들이 발자크의 소설로 부유세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것을 반가워해야 한다.
과학 분야에서는 최근 들어 기계학습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매튜 존스가 지적했듯이, 기계학습은 설명의 과학적 프로토콜을 혼란시키고 있다. 하나의 모델이 수천 개의 변수를 포함한다면  그 변수 중 어떤 것 하나가 강한 인과 관계를 발생시키고 있는지 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자연 현상을 우아한 수학 법칙으로 환원시키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선 이는 심각한 손실을 초래할 뿐이다. 반면, 인문학자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주제를 설명할 때 명확하게 하나를 찍어서 설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인공지능 시대의 인문학자들은 기계학습이 만들어내는 모호하고 복잡한 모델에 다른 분야의 학자들보다 훨씬 익숙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혁명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문학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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