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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냄새' 풍기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사회주의 냄새' 풍기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 교수신문
  • 승인 2019.04.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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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걷고 많이 주는' 방식의 우리 국민연금이 지금처럼 기업경영에 개입,
권력을 휘두르면 멀지않아 사회경제적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회장의 벌세 후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 주요한 사회 문제와 경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조회장의 연세 70세는 요즘 기대수명으로 따지면 애석한 별세다. 경제적으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마디로 대기업에 대한 의결권행사는 사회주의식 개입에 속한다는 것이다
사실 조양호 회장은 매출 4조원대의 그룹을 12조원대의 대기업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고 항공노선을 전 세계로 확대하면서 항공물류의 원활한 소통으로 수출에 크게 공헌한 재계 인사이다.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장녀인 조현아 씨의 땅콩 회항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도미노식으로 조양호 회장 일가의 치부가 공개되어 비난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정당국이 공적 사항과 사적 사항, 기업 경영과 형사 사건은 엄연히 분리, 처리하는 게 합당하지만 한진그룹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여론이 나빠지면서 별개의 사항으로 다뤄지지 않고 전방위 압력을 받아왔다. 수사의 계기는 지난해 3월 조 회장 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 사건이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는 광고 업체 직원에게 유리컵을 던지고 음료를 뿌렸다는 것이다. 경찰은 그에게 특수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에서 기각, 결국 이 사건을 작년 10월 무혐의 처분했다. 그래서 "경찰이 여론에 편승한 수사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이후에도 경찰·검찰·국세청·관세청 등 11개 정부 기관의 조사와 수사가 이어졌다. 조 회장의 아내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해 검찰은 폭행과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으로 혐의를 바꿔가며 두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법원에서 기각됐다. 또한 검찰은 조 회장에 대해 90억 원대 배임 등 다섯 가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이 역시 기각됐다.관세청은 지난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조 회장 자택 등 7곳을 압수 수색했다. 그 직후 "조 회장 자택에 '비밀의 방'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추가 압수 수색을 했지만 허탕을 쳤다. 지난해 한진그룹을 상대로 한 압수 수색은 공개된 것만 18회이고 총수 일가는 14차례 포토라인에 섰다. 국가 기관의 이런 공세는 지난 3월말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이 대한항공 등기이사직을 박탈당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하고 일부 외국인·소액 주주들이 가세한 결과였다. 조 회장의 사인은 폐질환으로 알려졌으나 지난 1년간 수사기관을 중심으로 한 현 정부의 한진 오너 가족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그에게 큰 심리적 부담을 줬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재계에선 "조 회장이 일련의 사태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말이 나온다.

의결권 행사에 정부의 개입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의 오너 경영자를 갈아치운 일은 벤처기업들에서는 더러 있었지만 굴지의 대기업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국민연금이 10% 이상 투자한 기업이 97개나 돼 재계가 받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공단은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기금운용위원회와 주주권행사여부를 결정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있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20명 중 5명이 현직 장차관이고, 위원장은 공단의 이사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는다.  이런 구조에서 의사결정에 청와대나 장관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대한항공에 대해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국민연금은 투자를 하든 경영에 참여하든 수익성과 안정성을 생명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의사결정의 전문성이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정치성이 끼어든다면 십중팔구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은 현 정부 들어 수익률 저하로 고전하고 있다.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이 비효율적인 투자와 기금관리 소홀로 지적되고 있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단일 기관투자자의 지분이 한 국가 주식시장의 6% 이상인 곳은 우리 국민연금이 유일하다"며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경영 활동에 개입할 경우 눈치 안 보고 활동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국민연금의 주주의결권 참여는 ‘사회적 공헌’을 내세워 시작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연기금 주주제는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다. 연기금의 수익성 제고와 사회 공헌이라는 목적 간에 충돌하는 의사결정 구조이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주주기업의 가치 제고를 견인할 정도의 전문성을 갖췄느냐는 의문에 대답은 노(NO)다.

국민연금 의결권의 구조적 문제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이익집단의 압력을 배제하기 어렵고, 따라서 의결권도 투자자의 이익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당국자는 기금운용과 관련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20명 위원 중 정부위원과 국책연구소장 등 정부 관계자는 8명밖에 안 되고 사용자, 근로자, 지역가입자대표의 의사에 반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단 한 주의 의결권도 갖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조차도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지고 ‘대기업이 국민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에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가격인하를 단행할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은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등 사회책임투자 요소를 고려하여 의결권을 행사한다(제4조의 2)는 모호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어 이익집단의 이해를 반영할 길을 열어 놓고 있다. 또한 의결권 행사지침을 검토 및 확정하는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 역시 전문성보다 대표성을 반영해 선임되기 때문에 이익집단의 이해를 반영하게끔 되어있다. 국민연금이 정부기구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기금운용 개입이 정당화되는 한, 정치적 개입은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 정부 지배서 해방시켜야   
국민연금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현행 국민연금은 2044년에 적자가 발생하고 2060년에는 기금이 고갈돼 제도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있다. 지역가입자 중 납부예외자의 비중은 2002년 42.5%에서 2018년 47.7%로 증가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지역가입자들의 소득 파악이 부진하여 직장가입자의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 2008년 신용불량자들에게 국민연금을 활용해 부채를 상환하도록 허용한 것과 같이 단기적인 편익을 도모하는 기금 전용 사례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은 "2007년 연금개혁 이후에도 똑 같은 문제점들은 되풀이해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연금이 개인의 저축을 대행하는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소득재분배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 고 설명했다. 시장경제체제에서는 개인의 미래 소득은 스스로가 저축을 통해 준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가입자 개개인에 대해서는 이러한 위험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금 상품의 공급이 위축되고 있다. 그래서 연금의 실질 가치를 보장하는 실질 연금시장은 선진국에서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런 문제 때문에 그 수급연령을 상향조정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가입자들이 늘어나야하는 데 그럴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적게 걷고 많이 주는’ 방식의 우리 국민연금이 지금처럼 기업 경영에 개입, 권력을 휘두르면 멀지않아 사회경제적 거센 반발에 부디 칠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금부터라도 수요자가 원하면 중도해약을 통해 적립금을 돌려주는 등의 경영 혁신이 필요하다. 결국은 민영화를 통해서 정부지배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 연금운용은 전적으로 민간 기관이 맞고 있다.

<최택만 편집위원/경제풍월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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