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계통별로 서술…문제의식의 일관성 부족
'한국문화사상대계'는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가 지난 7년 동안 18개 대학 62명 연구원을 동원해서 이뤄낸 작업이다. 영남대가 IMF 시절 침체된 지방의 국학연구를 부흥하고자 자금을 지원했는데, 지방대 학자들을 주축으로 오랜만에 규모가 큰 작업이 나왔다는 점에서 우선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류의 총서간행은 기존에도 있어왔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가 간행한 '한국문화사대계'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분류사적인 체계 속에서 국학적 유산을 집대성한 선구적 업적으로 꼽힌다. 그 외에 성리학사상, 법제사상 등 사상별로 한국사상사를 정리한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소의 '한국사상대계'가 있고, 정문연의 '한국사상사대계'도 필독자료로 널리 읽히고 있다.
이번에 나온 '한국문화사상대계'는 전례들과 다르게 학문별로 계통을 세워 서술하는 방식을 따랐다. 1권은 국문학과 한문문학, 2권은 국사학과 한국철학, 3권은 서지학, 과학, 농업학, 경제학, 4권은 법학, 문화인류학, 예술 분야에서 학문 발달과정의 주요한 맥들을 짚어보고 있다. '한국역사 발전과정에 있어서의 영남문화' 등 지역문화의 역할을 강조하려 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하지만 각 학문별로 적게는 2편, 많게는 7편 정도의 논문이 실려있어 학문의 발전사를 조명하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해당 논문이 그 학문의 역사와 최신의 경향을 제대로 반영하는 글인지도 의문이 드는데, 왜냐하면 각 학문을 조명하는 대표적 관점이 있고 그에 따라 논문이 씌어진 게 아니라, 그냥 논문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이다.
임란 이전의 한국사회사 가늠할 소중한 자료
하지만 이 책은 20권 20책으로 너무 巨帙이라 임진왜란 전에 출간이 시도됐다가 무산되고 1836년에야 빛을 볼 수 있었다. 동료 교수 4명과 이번 번역을 주도하고 있는 윤호진 경상대 교수는 이번에 1차분 10권을 펴냈고, 곧바로 2차분 10권도 작업에 들어갔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한문원문은 각권의 말미에 실려 있어 번역을 비교해볼 수 있다.
출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에서는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가 '대동운부군옥'이 출현하게 된 사상사적 맥락과 관련해 기조강연을 했고, 박추현 경상대 교수(중문학)가 이 책의 학술자료적 성격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색인' 작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요지의 발표를 해 눈길을 끌었다.
임 교수는 16세기 들어 문화적 창조의 중심부가 관학에서 사림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책이 한국 성리학의 적통인 퇴계학단(저자 권문해는 퇴계 말년의 제자다)에서 이뤄진 성과의 하나라고 그 위치를 자리매김했다. 또한 그 찬술의지가 '野乘'을 따져 읽으려는 점이라는 걸 높이 평가했고, 이 책이 곧바로 간행되지 못하고 250여년이나 뒤늦춰졌던 이유는 당시 유학이 출세지향적인 '虛學'으로 변질되면서 라고 지적했다.
한편 박 교수는 '大東韻府群玉'은 그 자체가 우리나라 최초의 逆順 사전이며, 이걸 잘 정리해 색인을 만들면 또 하나의 새로운 현대식 역순사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료성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여줄 것을 부탁했다. 사실 많은 학자들이 '대동문헌비고'라 해도 그것을 원문으로 일일이 읽지는 못하고 별도의 색인집을 통해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그리고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교정교열에서 철저하지 못해 군데군데 오타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나중에 개정판을 낼 때는 오타수정과 함께 이번 학술대회의 발표문·토론문을 실어도 괜찮을 것 같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