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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행사화 실적주으이로 자괴감만 증폭"
"인문학 행사화 실적주으이로 자괴감만 증폭"
  • 허진우
  • 승인 2019.04.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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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를 바라보는 학문후속세대의 시각
지난 17일 서울대에서 열린 '인문사회분야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 토론회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지난 17일 서울대에서 열린 '인문사회분야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 토론회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대한민국 인문학계가 ‘위기’라는 소리를 듣는다. 인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학문후속세대들은 정부 정책의 부작용이 불러온 위기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 인문학 전공자 감소도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꼽았다. 인구 감소로 인한 학생수 감소는 인문학 연구자 수의 감소라는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강원도립대 송승철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다.
연구팀은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18년도 인문정책연구사업’으로 대한민국 인문학 정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최근 인문정책총서 ‘한국 인문학 정책 연구 : 성찰과 대안’을 냈다.
연구팀은 인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학문후속세대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이에 따르면 비전임 인문학자들이 보는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정체성의 위기에 맞닿아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도 열정으로 버틴 인문학자들에게 ‘단기 실적주의’나 보여주기식 ‘인문학의 행사화’는 자괴감만 전했다는 것이다. 또 학과 폐지 등 현실적으로 학계 수요 위축으로 존폐 위기를 겪고 있는 점도 위기의식을 불러오는 한 요인이었다.
무엇보다 비전임 인문학자들은 정부 정책의 방향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가 관련 정책을 준비할 때 순수학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실제 그런 바탕으로 실행된 단기 실적 위주의 평가 기반의 지원제도가 위기로 향하는 속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BK, HK 등 연구재단의 대형 지원사업이 다른 학문에 비해 성찰과 참여 연구가 필요한 인문학의 특성을 왜곡해 인문학 본연의 특성을 제약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학자들은 정부 지원제도에 편승해 논문 실적에 목을 매고, 심지어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해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반성도 있다.
연구팀은 인구수 감소라는 사회적 인구학적 변화가 일으킨 구조적 위기도 한 원인으로 진단했다. 인구 감소는 학생수 감소를 불러오고, 학생들은 취업 경쟁에 매몰돼 인문학보다는 실용학문을 선호해 자연히 인문학 연구자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비전임 인문학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인문학자에 대한 대학가의 낮은 시선도 만들었다. 학생들은 강사들을 교수로 받아들이지 않고, 교수들은 노동력 착취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책이 오히려 비전임 인문학자들을 위기에서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원제도가 빈인빈 부익부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 진흥 및 지원제도가 전임교원에 집중되고 비전임 전공자는 소외되고 있어서다. 실제 지원사업 연구책임자를 전임교원으로 제한하고 있어 전임교원의 프로젝트 무임승차를 가능하게 했다. 또 학회 운영 등에 대한 대학 지원이 전임교원에 국한하고 있어 비전임 교원들은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에 후속세대들은 강사법의 대응 방향에 대해 비전임교원을 전임교원으로 전환하는 ‘정규직 확대’와 비전임교원 지위는 유지하면서 처우와 경제적 안정성을 지원하는 ‘유연 안정성’을 이야기했다. 또 인문학 위기 대응을 위한 학문후속세대 지원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도 희망했다. 장기비전과 전략적 대응을 위해 기존 조직간의 이해 관계에 따른 충돌을 조정해 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문학 학문후속세대들은 연구 지원방식도 연구재단이 대학 등 기관을 통해 지원하는 게 아니라 연구자 개인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기관을 통한 지원이 기관-전임교원-비전임교원의 수직적 권력관계가 작용할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간접비 상승으로 실연구비의 감소를 야기할 뿐 아니라 복작한 행정처리로 인한 물리적 시간적 비용 소모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원정책이 전임교원에 편중돼 있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독립연구자나 시간강사 지원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양과목 확대를 통한 비전임 시간강사의 안정적인 강의시수 확보 요청으로도 이어진다.
무엇보다 ‘공정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지원제도 수혜자 선정과정, 전임교원 채용 과정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실례로 지역 및 행정적 고려에 따른 대상을 선정하거나, 수혜자 연령을 제한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인문학 살리기에 힘을 내려 하고 있다.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3개 부처가 함께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준비한 것이다. 올해만 약 23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2022년까지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인문학 전공 학문후속세대들은 여전히 불편한 시선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모 대학 신학 전공 비전임교원은 “교육이라는 자체가 단순히 1~2년 계획이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장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사회학 전공 비전임교원은 “기존 조직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새로운 걸 한다고 그것과 관련된 컨트롤타워부터 만드는 게 우리나라 행정이다. 회의적이다”라고 말했다.
허진우 기자 happ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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